[데스크 칼럼] 투자활성화, ‘실패 용인’이 첫걸음

입력 2024-12-1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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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진 중소중견부장

美성장 뒤엔 대규모 투자·혁신 있어
‘실패는 재기불능’ 한국선 언감생심
자금편중 풀고 법·제도 정비 시급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군사 모든 면에서 세계 1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과거 소련이 군사력으로 미국과 세계 1위를 경쟁하다 해체됐고 경제에서는 독일과 일본이 미국을 넘보다 주저앉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이 경제와 군사에서 미국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주장을 하는 전문가는 없다.

미국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은 달러 패권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왜 미국이 세계 1위 국가를 유지하고 있을까. 먼저 수년간 고물가에 대한 대응 방식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0.25%에서 5%까지 끌어올렸다. 미국이라고 금리 인상에 따른 개인과 기업, 은행 등 금융권에 어려움이 없었을까.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했고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 여러 금융기관이 고금리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 파산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었다.

기업들 역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미국은 전 세계 기축통화 달러 패권으로만 고물가에 따른 금리 인상을 견딘 게 아니다. 기업은 물론 은행 등 금융권의 구조조정이 있었던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통계가 아닌 실질적인 물가는 여전히 치솟는 중이다. 전 정부의 실패한 부동산 정책이라던 현 정부는 폭등한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까 봐 유지하기에 급급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없고, 오히려 대출만 폭증해 이젠 내수부진까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시장원리에 따라 고물가에 고금리 경제 원칙을 지켰고, 그에 따른 구조조정을 통해 잠재부실을 정리했다. 우리나라는 법인세와 종부세를 인하한 것 외에는 없는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미국의 성장 이유로 ‘투자’를 꼽았다. 다른 국가들과 기업들이 모두 ‘비용 절감’에 골몰하고 있을 때, 미국만이 유일하게 정부와 민간 부문 모두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대규모 투자를 통한 ‘혁신’으로 생산성 향상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최근에만 이런 것이 아니다. 항상 개인들의 창업과 기업과 정부의 투자로 신산업에서 주도권을 놓친 적이 없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벤처 창업과 투자가 일어나지 않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중요한 게 신용불량 제도다. 우리나라는 은행 등 금융권 최우선주의 국가다.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고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개인회생제도가 있지만 이를 통해 약속한 돈을 모두 갚아야 은행 등 금융권 정상 거래가 가능하다.

반면 미국은 신용불량자 제도가 없다. 은행이 A라는 주택에 담보대출을 제공할 경우, 그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차입자는 A주택만 은행에 넘기면 그만이다. 이 연체자가 잘 쓰고 있던 다른 신용카드가 있다면, A주택 대출금을 연체해도 아무런 문제 없이 계속 사용한다. 이런 시스템이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미국이 이른 시간에 충격을 딛고 일어설 수 있던 배경이었다.

법인 대표 연대보증으로 벤처 창업을 했다가 한번 실패하면 사실상 재기불능한 우리나라에서 미국과 같은 창업과 투자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셈이다.

신용불량제도뿐 아니라 투자 사기에 대한 개념도 정립해야 한다. 투자를 받아 사업하다 실패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투자 사기로 전과자가 되는 나라에서 투자는 활성화될 수 없다.

우리와 비슷한 사정인 중국이 수백조 원을 쏟아부으며 내수를 살린다고 하지만 효과는 없다. 돈들이 투자와 소비로 가지 않고 부동산으로만 가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쏠린 자금과 높은 부채를 고통스럽지 않게 해결한 나라는 전 세계에 어느 국가도 없었다. 편중된 투자와 부채를 해결하고,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법과 제도, 개념 정리가 우선이다. skj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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