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단 기준 변경으로 산업 현장 혼란이 우려된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통상임금 산입범위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임금 갈등을 해결하려면 갈등의 원인부터 살펴봐야 한다. 출발은 3저(저금리·저유가·저환율) 호황기인 198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호실적에 고무된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임금을 올렸다. 급격한 임금 상승을 경계한 정부는 기업들의 임금 인상을 억제했다. 이에 노·사는 기본급 인상률을 낮추고 수당을 늘리는 방식으로 합의했다. 근로자들은 임금 구성항목과 무관하게 실제로 받는 돈이 늘기에 이익이었고, 기업들은 정부에 협조했단 명분을 만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기업은 수당의 종류만 100개가 넘는 기형적인 임금체계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외환위기 이후 임금이 정체되면서 근로자들의 불만이 쌓였다. 안 그래도 인상률이 낮아졌는데, 인상률을 기본급에 적용하니 인상액이 작아 보였다. 그렇게 통상임금 갈등이 시작됐다. 근로자들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투쟁을 벌였다.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산입해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 법정수당과 임금 인상분을 높이려고 했다.
통상임금 갈등은 2013년 대법원 판결로 한 차례 정리됐다. 당시 대법원은 통상임금 판단 기준으로 시기의 정기성, 대상의 일률성, 금액의 고정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통상임금 갈등은 지속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요건을 회피한 ‘변종’ 수당·상여금이 생겨났다. 재직 조건이나 근무 일수에 조건을 걸어 지급 여부나 금액을 달리 정하는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노·사 중 어느 한쪽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노동계는 당장 이익을 늘리길 바랐고, 기업은 당장 지출이 늘더라도 장기적 부담을 줄이길 바랐다.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수당·상여금 신설은 이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대법원이 이번에 통상임금 판단 기준 중 ‘고정성’ 요건을 폐지하면서 조건부 정기상여금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이것이 통상임금 논쟁 종결을 뜻하진 않는다. 기존의 임금·수당 결정 관행이 바뀌지 않는다면 언제든 변종 수당·상여금이 생길 거고, 이는 곧 법정 분쟁으로 이어질 거다.
궁극적으로 임금 구성항목에 맞춰 통상임금 기준을 정하기보다 통상임금 기준에 맞춰 임금 구성항목을 단순화해야 한다. 정기·일률성을 띠는 수당·상여금은 기본급에 산입하는 게 출발이다. 무엇보다 임금단체협상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 대립하는 양측의 이해관계를 적당히 버무린다고 합리성이 높아지지 않는다. 노동시장에선 합리성은커녕, 최악의 결과만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