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와 분노를 창조 동력으로 삼아
절망 떨치고 앞만 보고 달려나가자
…
안락함보다 가슴 설레는 삶을 좇는
사자의 강인함에 자유 의지 새기길
묵은해가 가고 새해 첫 해가 구름을 뚫고 떠오르네요. 산모가 산통을 겪고 아기를 낳듯이 하늘이 어둠에 씻긴 해를 낳네요. 참담한 환란과 사고로 얼룩진 묵은해를 떨치고 떠오른 새해 첫 해는 은혜로운 빛을 누리에 골고루 나누겠지요. 저 빛 아래 섬진강과 임진강은 제가 흐른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흐르겠지요. 흰 눈 덮인 지리산 노고단과 설악산 대청봉은 의연한 자태를 뽐낼 테지요. 아직 모란과 작약의 때는 멀었어요. 그 화사한 꽃들을 만나려면 인생이란 학교에서 기다림을 충분히 배워야 하겠지요.
나는 파주 교하에 살고, 당신은 저 먼 곳에서 살아요. 파주 겨울은 어둠이 길고 북쪽 툰드라 지역의 한랭한 기후 영향으로 공기가 차갑지요. 가끔 이마에 닿는 찬 공기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지요. 우리는 겨울의 잔광 속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나는 무엇을 하고/세상은 무엇을 하는가/세상이 무엇을 할 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내가 무엇을 할 때/세상은/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김경미 시, ‘밤, 기차, 그림자’ 일부) 첫눈이 분분하던 새벽 나는 고적함에 몸을 맡긴 채 서 있었지요. 지붕들을 하얗게 덮던 새벽의 아름다움이 두렵습니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가질 수 없을 테니까요. 기어코 바깥으로 나가 그 차가운 것을 가만히 손에 쥐어보지요.
내가 깨어나 있는 시각 당신은 깊은 잠에 빠져 있겠지요. 당신이 아침에 양치질을 하던 시각 나는 불 꺼진 저녁 시골집에서 중국술을 마시며 마두금을 연주하겠지요. 우리는 오래 격조했어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동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지나갔을까요? 우리가 오래 쓴 비누는 닳아가고 젖은 수건은 빨랫줄에서 건조되겠지요. 치약은 나날이 줄고 상비약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겠지요. 낡은 셔츠의 단추들은 떨어졌는데, 그중 몇 개는 장롱 밑에서 발견되겠지요. 집안을 꽃밭인 듯 웃음판으로 만들던 딸애들은 멀리 떠나ㅋ, 나는 끼니때면 혼자 먹을 밥을 끓이겠지요. “사과는 썩고 피부약은 뚜껑 밖으로 흘러 넘치”던 그 많은 날들, 오, 우리 마음이 정처 없을 때 밤은 무엇을 할까요? 기차는, 골목길은, 세상은 다 무얼 할까요? 밤은 별들의 풍찬노숙을 도우려고 제 품을 빌려주고, 기차는 대륙을 횡단하고, 골목은 어둠과 가로등의 연애를 위해 일부러 눈을 감겠지요. 내가 새 원고를 옆구리에 끼고 우체국으로 향하던 시각 당신은 아이처럼 자고 있었겠지요. 당신은 혼곤한 잠 속에서 제가 꿈길에 다녀간 것조차 차마 모르겠지요.
세월은 빛보다 먼저 달려가지요. 세월은 늘 저만치 앞서서 우리를 기다리지요. 새해 첫날을 기뻐하세요. 묵은해는 로또복권이 당첨되는 어마어마한 행운 따위는 없었지요. 우리는 열심히 살았고 절망의 한가운데 있어도 웃으려고 분투했어요. 웃음이란 생의 환희를 보여주는 면류관입니다. 웃음 없는 삶이란 삭막하게 짝이 없어요. 잘 웃는 사람이 되려면 삶을 기쁨이 샘물처럼 솟아나게 하세요. “웃어라, 그러면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라는 시구처럼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잘 웃는 사람, 웃음의 달인이 되려고 애를 써보세요. 산다는 것은 저마다 인생이란 책을 쓰고 있는 중이지요. 우리는 세상에 남기는 단 한 권 ‘인생이란 책’의 저자들이지요.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로 그 책의 한 페이지를 적어가겠지요. 그러니 희망을 안고 뛰고 달리고 도약해 보세요. 뱀이 허물을 벗듯 절망은 벗어던지고 앞으로 달려가세요. 새해엔 게으름을 떨쳐내고 더 약동하는 생을 위해 애를 써야겠지요.
새해엔 고분고분한 낙타보다는 포효하는 사자 같이 살아보세요. “비둘기 떼와 함께 오는 웃는 사자”(니체)란 온갖 장애물을 넘는 개척자, 강건한 존재의 표상이겠지요. 낙타가 명령을 내리는 주인에게 순응하는 피동의 존재, 무거운 것을 짊어지는 누추한 처지가 된 것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던 탓이지요. “나는 하고자 한다(Ich will)”는 능동에 제 삶을 비끄러매는 사자의 강인함은 자유에의 의지에서 비롯되지요. 사자는 명령도 거부하는 자, 스스로의 법 말고는 규정할 수 없는 자, 자유만을 열망하는 자이지요. 사자는 책임과 의무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하는 자, 증오와 분노를 창조의 동력으로 쓰는 자이지요. ‘나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자발적 의지에서 사자의 정신은 빛나지요. 칸트는 “나쁜 짓을 하려 해도 할 수조차 없게 된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는데, 낙타야말로 나쁜 짓을 하려 해도 용기가 없어서 포기하는 존재겠지요. 나약한 자의 웃음은 위선이고, 비굴에 지나지 않지요. 낙타의 연약함은 제 안의 병리적 불능 상태를 드러낼 뿐이지요. 타인의 동정과 연민에 저를 의탁하는 것은 생명의 타락 그 자체겠지요. 새해에는 낙타가 아니라 스스로 나서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로 충만한 용맹한 사자로 살아볼까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잘 하는지도, 무엇을 할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이들은 자기 내면에 숨은 힘과 용기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흔하지요. 그건 내면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성찰을 하지 못하는 탓이지요. 자기를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삶을 발명하지 못하지요. 기껏해야 낡은 도덕과 해묵은 관습에 매인 채 피동으로 살아갈 뿐이지요. 자, 우리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니체가 “우리는 모두 우리 내면에 숨겨진 정원과 농장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할 때 우리 내면의 정원과 농장이란 도약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생의 약동을 기르는 물적 토대이겠지요.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정원과 농장을, 제 안에 큰 화산을 가진 존재이지요. 그걸 모른 채 사는 사람은 제 불행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조차 모르겠지요.
새해가 밝았어요. 빛으로 충만한 누리 속에서 우리는 늠름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어요. 하루는 신이 공평하게 나눈 선물이지요. 새해 아침 개봉하지 않은 선물 365개를 거저 받은 것보다 더 놀라운 사건이 있을까요?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세요. 날마다 아삭아삭 씹히는 사과를 깨물며, 새해 첫날의 다짐들을 되새기며 살아보세요. 불의에 분노하고, 가난한 이에게 먼저 도움을 베풀어보세요. 굽은 어깨를 쭉 펴세요. 안락함보다는 가슴 뛰는 삶을 선택하세요. 비굴을 떨쳐내고 비둘기 떼와 함께 돌아오는 사자처럼 웃으며 살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