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향(香)

입력 2025-01-0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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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연필뮤지엄 관장

▲Ev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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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잘 때는 뭘 입으세요?”라는 질문에 매릴린 먼로는“샤넬 No.5”라고 대답했다. 이 유명한 인터뷰 이후, 샤넬 No.5는 단순한 향수를 넘어 자유로움과 관능미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향은 매혹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다뤄진다. 소설의 주인공 그루누이는 체취가 없지만, 세상의 모든 냄새를 구별하고 기억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는 완벽한 향수를 만들기 위해 젊은 여성들의 체취를 추출하려는 집착에 빠져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이 소설은 향기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그루누이의 집착과 광기를 통해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매릴린 먼로가 사랑한 샤넬 No.5는 전통적인 꽃향기의 틀을 깨고, 현대 여성을 위한 새로운 향수로 탄생했다. 샤넬은 여러 샘플 중 다섯 번째 샘플을 선택해 No.5라는 이름을 붙였다. 샤넬 No.5는 알데하이드라는 혁신적 성분을 사용한 첫 향수로 향기의 확산과 지속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레몬, 자스민, 백합, 바닐라 등이 조화를 이루어 복합적이고 풍성한 향으로 완성되었다. 향수병의 디자인도 당시 유행하던 곡선형 대신 모던한 사각형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샤넬의 본명은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이다. 그녀는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해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녀가 부른 ‘코코 리코’ ‘누가 코코를 보았니?’가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은 그녀를 ‘코코’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그녀의 예명이 되었다.

코코 샤넬은 여러 인터뷰와 전기에서 순탄하지 않았던 젊은 시절과 생계를 위해 부유한 남성과의 관계에 의존했던 과거를 암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녀의 솔직한 발언들은 당시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려 했던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의 주인공 또한 코르티잔(부유한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사교계에서 활동하며 생활했던 여성)이다. 원작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椿姬·동백아가씨)’로, 그는 ‘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으로 잘 알려진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들이다.

제목에서의 동백꽃은 끈기, 영원한 사랑, 고귀함을 상징하는데, 소설과 오페라의 주인공인 비올레타의 감정은 동백꽃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된다. 흰색과 붉은색 동백꽃은 순수함과 열정, 연애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며, 툭 떨어지는 동백꽃의 모습은 인생의 덧없음을 암시한다. 뒤마 피스와 베르디는 비올레타와 동백꽃을 통해 사랑과 고결함 그리고 슬픔의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샤넬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모자 가게를 열며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세기의 디자이너로 자리 잡았다. 그녀가 애정했던 모티브 역시 동백꽃이다. 불우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비올레타에게 감정이 이입된 것은 아니었을까?

동백꽃은 샤넬의 디자인 철학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그녀의 디자인이 추구한 ‘단순함 속의 아름다움’은 동백꽃의 대칭적인 형태와 단아한 아름다움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녀는 동백꽃 모양의 브로치와 핸드백 장식을 통해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동백꽃은 흥미롭게도 향기가 없다. 향기가 없지만, 동백꽃은 고귀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며, 샤넬은 이를 자신의 디자인과 향수에 고스란히 담았다. 소설 속 그루누이는 체취가 없지만 향기에 대한 집착으로 광기에 빠져 파멸에 이른다. 반면 샤넬은 무향의 동백꽃에서 영감을 얻어 감미롭고 독창적인 향수를 창조하며 그녀만의 향기를 세상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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