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계열사 전반으로 소송전 확산 가능성
현대차 노조 역시 통상임금 관련 투쟁 돌입
노조들 기업 압박 수단으로 소송 남발할 여지
기아 노동조합이 사측을 상대로 통상임금 소급분 요구 소송을 이달 28일 제기하기로 하면서 경영계에 ‘통상임금 후폭풍’이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뒤집고 내린 결정으로 인해 기아를 시작으로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와 산업계 전반으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확산할 가능성이 커졌다. 세계적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글로벌 경쟁 심화,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중고 등 최악의 경영 환경에 직면해 있는 국내 기업들은 추가 인건비 부담 우려에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3일 법조계 및 재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2월 19일 현대차와 한화생명보험 전·현직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 재직 여부나 근무 일수 등을 지급 조건으로 설정한 조건부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통상임금 판단 기준 가운데 하나였던 ‘고정성’ 요건을 삭제하면서 기존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이에 따라 초과근무 수당, 연차수당 등 통상임금을 기초로 하는 각종 수당이 오르면서 기업들은 추가 비용 부담을 안게 됐다. 다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새 법리에 따라 기존 임금을 재산정해달라는 줄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소급효를 제한했다. 법률관계의 혼란을 고려해 새로운 통상임금 법리는 병행소송에만 제한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기아가 이번에 제기하는 소송은 주휴수당과 근로자의 날, 사용연차와 통상임금 제수당 등의 소급분을 돌려달라는 취지다. 기아는 근속 수당과 직급 수당 등 15개 수당을 ‘통상 제수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여기엔 한 달에 15일 이상 재직한 근로자에게만 지급한다는 ‘고정성’ 조건이 붙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노조 측은 제수당을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아 뿐만 아니라 현대차 노조 역시 통상임금 관련해 소송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미 현대차 노조는 이번 판결 직후 상여금 관련한 노사 협의를 벌였다. 이 회사 노조는 매년 기본급의 750%를 상여금으로 받는다. 2019년에는 이 중 600%만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판결 후인 지난달 3일 노사 합의를 통해 나머지 150%도 추가 포함하기로 했다. 현대차 노조는 주휴수당과 근로자의 날, 사용 연차 등도 통상임금으로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조건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나온 후 실제 판결도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23일 세아베스틸 전·현직 근로자 1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조건부 정기상여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세아베스틸 직원들이 통상임금 계산에서 문제 삼은 부분 중 장애인 수당과 주휴 수당 부분은 재심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파기환송해 원심법원에서 다시 재판하도록 했다.
같은달 13일에는 IBK기업은행 노조와 퇴직자 1만1202명이 ‘600%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회사 측 손을 들어준 2심을 깨고 파기 환송 결정을 내렸다. 기업은행은 최종 패소 판결이 나면 775억 원을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은 앞으로도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새로운 통상임금 판단 법리는 소급되지 않지만 노조들이 임금 체계 개편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해 기업 압박의 수단으로 소송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실제 지급 판결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임금 관련 소송 자체가 기업 입장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리스크 중 하나”라며 “경제 상황도 안 좋은 상황에서 임금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환경이 더욱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