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수작이 터졌습니다. 넷플릭스 글로벌 사용자들을 사로잡은 한국 드라마가 또 나온 건데요. 이번에는 ‘의학 드라마’였죠. 지난달 24일 공개된 ‘중증외상센터’는 기존 한국의 의학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했던 ‘로맨스’를 뺀 작품인데요. 그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쏙 들어버린 명작이 됐죠.
의학 액션 스릴러 코미디물을 표방한 ‘중증외상센터’는 현실을 꼬집는 허구, 허구를 바라는 현재 모두를 담았는데요. 그 현실 같은 허구가 시청자들을 이끄는 묘한 매력이자 허탈함이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국제평화의사회 소속으로 전쟁지역에서 의료활동을 해오다가 한국대병원 중증외상센터 교수로 부임한 천재 외과 전문의인 백강혁(주지훈 분)의 고군분투 이야기인데요. 유명무실했던 중증외상팀을 실제로 사람을 살리는 중증외상센터로 만들어 가는 백강혁과 그를 따르는 외상외과 펠로우 양재원(추영우 분), 외상외과 시니어 간호사 천장미(하영 분), 마취통증의학과 레지던트 박경원(정재광 분)의 팀워크도 눈부시죠.
5일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인 ‘넷플릭스 톱 10’에 따르면 1월 다섯째 주(1월 27일∼2월 2일) ‘중증외상센터’의 시청 수는 1190만(총 시청 시간 8270만 시간)으로 비영어권 TV쇼 1위를 기록했는데요.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칠레, 페루, 루마니아,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아랍에미리트 등 전 세계 26개국 TOP 10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서는 세계 2위까지 올라섰고요. 지난달 26일 공개돼 5주 연속으로 1위 자리를 지키던 '오징어게임 시즌2'는 2위(520만 시청 수)로 밀려났죠.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을 원작으로 삼았는데요. 웹툰 ‘증증외상센터’ 역시 누적 조회수만 4억1000회에 달하는 인기 웹툰이죠. 원작자가 이낙준 필명은 한산히 가인 이비인후과 전문의입니다. 실제 의사가 쓴 작품인 덕에 그 현실감을 더 드러나는데요. 물론 드라마는 의학 지식을 전문적으로 내세운 메디컬 드라마라기보다는 전쟁터를 누비고, 천재적인 수술 솜씨를 뽐내는 의사를 중심으로 한 판타지가 강한 작품입니다.
이낙준 작가는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유명한 외상외과 의사인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을 백강현의 모티브로 삼았는데요. 이낙준 작가는 이국종 교수가 집필한 ‘골든아워’를 읽으면서 외상외과 분야에 관심을 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3일 유튜브 채널 ‘침착맨’ 라이브 방송에 출연한 이낙준 작가는 현 외상외과 시스템을 언급하면서 “엉망이다. 지금은 (집필했을 때보다) 낫지만, 너무 힘들다”면서 “이국종 교수님의 글을 읽고 (환경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힘들더라”라고 했죠.
이어 “(그렇기에) 백강혁 같은 괴물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백강혁을 마블 히어로 같은 사람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며 괴물 뺨치는 판타지 속 백강혁의 등장 이유를 밝혔는데요.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이 의도대로 천재 의사 백강혁을 묘사하는 데에 공을 들였습니다.
이 ‘중증외상센터’의 위기는 위급한 의료상황이 아닌 ‘적자’가 불러오는데요.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증외상센터를 바라보는 내부 갈등에서 비롯됩니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작중 배경은 2015년인데요. 2015년에도 갈등이 생겼던 이 문제는 2024년에도 여전합니다.
외상전문의를 육성해오던 국내 유일의 수련센터가 11년 만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4일 전해졌는데요. 의료계 등에 따르면 고대구로병원은 28일 중증외상전문의 수련센터 운영을 중단할 예정이죠. 고대구로병원은 중증외상전문의를 육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2014년 3월 보건복지부가 서울지역 외상전문의 집중 육성 수련병원으로 지정했는데요. 11년간 20여 명의 외상전문의를 배출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지원해왔던 연간 9억 원의 예산이 올해 지급되지 않게 되면서 운영이 중단된 거죠.
국내 유일의 중증외상전문의 육성센터가 운영을 중단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중증외상 전문의 수급이 더 막막해졌는데요. 드라마 속 차기 대권 주자로 언급되는 강명희 보건복지부 장관(김선영 분)의 전폭적인 지지로 1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장면과 상반되죠. 강명희 장관은 백강혁을 전폭적으로 밀어주면서, 중증외상센터 의료인력 추가 및 닥터헬기 마련 등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요. 이는 실제 상황에서 바라보면, 허구가 됐습니다.
닥터헬기도 마찬가지인데요. 닥터헬기의 도입도 이국종 교수의 역할이 컸습니다. 닥터헬기는 의로진이 탑승하여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치료하고 이송하는 전용 헬리콥터로 하늘을 나는 구급차의 역할을 하죠. 이 시스템은 현재 전국 8곳에서 운영 중이며 2011년 첫 도입 이후 2025년 1월 기준 누적 이송 건수가 1만4755건에 달합니다.
하지만 그 비용이 만만찮은데요. 닥터헬기 한 대를 운영하는데 연간 40억 원의 예상이 소요됩니다. 이는 중앙정부가 70%, 지방정부가 30%를 부담하는 구조죠. 단 8대의 닥터헬기 수만 봐도 그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충북과 부산·경남, 경기 북부 등에는 아직 도입되지도 않았습니다. 실제 운영을 맡아야 할 병원도 의료진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또 이 닥터헬기를 향한 민원도 사업을 막는 요인인데요. 헬기 소음과 이착륙에 대한 민원이죠. 이낙준 작가 또한 ‘중증외상센터’ 시즌2를 언급하면서 닥터헬기 민원을 다룰 것이라고 스포하기도 했는데요. 이 답답한 현실과 꿈꾸는 허구가 허탈하기까지 하죠.
드라마 상에서도 중증외상센터 운영에 적대감을 드러내던 한국대 일반외과장 겸 대장항문외과장 한유림(윤경호 분)은 자신의 딸이 교통사고 응급상황으로 실려 오자 자기 생각을 반성하는데요. ‘응급상황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 이 당연한 말이 인식변화와 현실개선으로는 당연하게 다가오지 않는 공백이 안타까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