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새벽 2시. 뜬눈으로 밤을 새운 이들이 많았을 겁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공포 게임 시리즈 '파피 플레이타임 - 챕터4'(Poppy Playtime - Chapter 4)가 발매되는 날이었기 때문인데요. 한국 시각으론 30일 밤 10시에 출시될 예정이었으나 조금 연기되면서 31일 새벽 2시께 베일을 벗었죠.
'파피 플레이타임' 시리즈는 미국의 인디 게임 개발사 모브 엔터테인먼트의 1인칭 생존 호러 게임입니다. 과거엔 현장체험 학습장으로도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폐쇄된 장난감 공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큰 틀 아래 독특한 퍼즐 요소, 스산하고 긴장되는 분위기, 개성적인 캐릭터 디자인으로 2021년 10월 공개된 첫 번째 편부터 빠르게 인기 순위에 들었습니다.
이어 2022년 5월 챕터2, 그리고 지난해 1월 챕터3가 출시됐습니다. 매 챕터 새로운 빌런과 긴박감 넘치는 추격 신이 등장하면서 이용자들의 비명을 자아냈죠.
챕터3으로부터 딱 1년 만에 출시된 챕터4. 시리즈의 명성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했지만, 뜻밖에도 세계 곳곳에서 혹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팀 유저 평가는 5일 기준 '복합적'(Mixed)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전 시리즈들이 모두 '매우 긍정적'(Very Positive)을 기록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공포 게임은 대다수가 '방치형'입니다. 플레이어 간 경쟁 게임(PVP), 역할수행게임(RPG) 게임은 개발사 측의 활발한 업데이트로 신선한 재미 요소를 불어넣지만, 스토리 흐름과 몰입감에 초점을 맞춘 공포 게임은 추가 콘텐츠로 인해 오히려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또 주류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대기업'들의 관심에서도 먼데요. 단순하지만 독특한 플레이 방식으로 하나의 장르가 된 '8번 출구'만 떠올려봐도 일본의 인디 공포 게임입니다. 지속적인 콘텐츠 업데이트를 하기엔 자금이 부족한 실정인데요. 새로운 공포 요소를 끊임없이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부담 요소죠.
무엇보다 공포 게임은 첫 플레이가 중요합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긴장감 속에서 조심스레 플레이할 때 공포감과 충격이 최고조에 달하는데요. 첫 플레이 이상의 몰입도를 끌어내는 게 개발사 측에선 어려울뿐더러 비효율적이기까지 합니다.
다른 이용자와의 경쟁 요소가 있거나 협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 싱글 플레이 방식이라 커뮤니티 기반도 약합니다. 쉽게 말해 유저 유지율이 떨어진다는 거죠.
'파피 플레이타임'이 시리즈 전략을 택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 번에 전체 스토리를 공개하지 않고 새 확장팩(DLC)마다 메인 빌런과 주된 이야기를 새롭게 제시하는데요. 한 번에 게임을 모두 공개한 뒤 세부적인 업데이트를 진행하면 출시 이후 관심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지만, 새 챕터 공개는 매번 이슈가 되면서 큰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죠. 챕터마다 다음 챕터에 대한 '떡밥'(힌트)도 던지면서 이용자들의 토론을 유도, 이용자 유지 및 유입도 노리는데요. 실로 챕터2·3는 모두 출시되자마자 스팀 전 세계 최고 판매 제품 랭킹 최상위권에 진입하면서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이 전략으로만 게임이 흥행할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헬로 네이버'(Hello Neighbor), 벤디 앤 더 잉크 머신'(Bendy and the Ink Machine) 역시 본편이 관심을 받으면서 수년에 걸쳐 DLC들을 공개한 게임인데요. 제대로 회수되지 않은 떡밥, 스토리의 일관성 부족, 챕터별로 떨어지는 게임 완성도, 너무 긴 출시 주기 등에 대해 지적이 나오면서 이용자들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내 뇌리에서 잊혔습니다.
'파피 플레이타임'의 성공엔 챕터 전략과 함께 강렬한 캐릭터성, 몰입감 넘치는 공포 요소, 적재적소에 배치된 떡밥 등이 있었습니다.
본편은 40분 내외의 플레이 타임을 제공하는데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점프 스케어(갑작스럽게 튀어나와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 기법)로 나가떨어진 이용자들이 숱합니다. 특히 게임 말미 등장하는 '허기 워기'와의 긴박한 추격전은 이용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는데요. 다음 챕터에 대한 수많은 떡밥이 등장하면서 '플레이타임 Co.'에 대한 의문도 키웠죠.
이어 공개된 챕터2에서는 또 다른 빌런 '마미 롱레그스'가 등장하면서 또 다른 비주얼적 충격을 줬습니다. 챕터마다 새로운 실험체, 플레이타임 Co.의 비밀이 점진적으로 공개되면서 추측할 여지를 남겼죠.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받아 퍼즐 요소를 더 다양하고 정교하게 구성한 점도 호평받았습니다.
지난해 출시된 챕터3에 대해선 모브 엔터테인먼트가 "완전히 새롭고 지금까지의 챕터 중 가장 무서운 모험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자부한 바 있습니다. 장난감 공장 아래 만들어진 고아원 '플레이케어'를 헤쳐 나가면서 메인 빌런 '캣냅'에게서 살아남아야 하는데요. 기괴한 캐릭터 디자인과 시야를 벗어나면 빠르게 움직여 유저를 공격하는 특징으로 더 큰 공포감을 준 '미스 딜라이트'의 압박감도 빼놓을 수 없죠. 챕터3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요. 86%의 긍정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챕터3부터는 한국어 공식 자막과 음성 더빙도 서비스하면서 국내 팬들에게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출시된 '파피 플레이타임 챕터4'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5일 기준 챕터4는 5000여 명의 이용자 평가 중 62%의 긍정도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역대 '파피 플레이타임' 시리즈 중 최저 평가에 해당합니다.
대다수 혹평은 출시 초반 대량으로 발견된 버그에서 비롯됐습니다. 출시 초반 자질구레한 버그는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챕터4에서 나타난 버그는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였는데요. '파피 플레이타임' 시리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긴박한 추격 신에서 빌런이 돌연 사라진 게 대표적입니다. 이번 챕터에서 새롭게 등장한 크리처 '야나비'와의 추격 장면에서 야나비가 아예 등장하지 않으면서, 그저 퍼즐만 푸는 평화로운(?) 상황이 돼버렸죠.
맵 곳곳이 너무 밝거나 너무 어두운가 하면, 갑자기 바닥으로 쑥 꺼져 움직이지 못하는 버그도 발견됐습니다. 수많은 이용자는 스팀 리뷰에 "이 상태로 게임을 공개하지 말았어야 했다", "최악의 챕터" 등 회의적인 반응을 쏟아냈는데요. 패치를 통해 피드백을 반영하고는 있지만, 발 빠르게 게임을 플레이한 이용자들은 "두 번은 못하겠다"며 혀를 내두르는 상황이죠.
패치로도 개선되지 못할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퍼즐 요소가 너무 많아 지루하다"는 의견은 차치하더라도, "공포 게임 같지가 않다"는 혹평은 뼈아프죠.
'야나비'와의 추격전 버그는 패치로 수정된 상황이지만 이전 시리즈의 추격전에 비해 임팩트가 떨어진다는 게 중론입니다. '박사'와의 추격전도 마찬가지죠. 챕터1의 허기 워기, 챕터2의 마미 롱레그, 챕터3의 미세스 딜라이트 등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의견이 이어집니다.
한 이용자는 "솔직히 말해 챕터4를 플레이하면서 조금이라도 긴장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빌런의 디자인 자체가 그렇게 무섭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지만, 더 큰 문제는 그들과 마주했을 때 실제로 위험에 처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파피 플레이타임' 시리즈 팬들 사이에서는 "예정된 일이었다"는 말도 나옵니다.
사실 챕터3는 애초 2023년 12월 공개될 예정이었습니다. 출시일은 돌연 연기됐는데요. 개발사 핵심 멤버들의 이탈 때문이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부서의 총 책임자이자 핵심 애니메이터들이 퇴사하면서 게임 출시를 약 한 달 미룬 겁니다.
챕터3 발매 후인 지난해 2월엔 캐릭터 아티스트가, 지난해 3월엔 디렉터가 떠나면서 원년 멤버들이 줄줄이 모브 엔터테인먼트를 떠났는데요. '파피 플레이타임' 론칭에 제일 크게 기여했을 이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개발될 챕터4에 대해 우려가 나온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퇴사한 인원 대다수는 자신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회사와 방향성이 달랐다'고 퇴사 이유를 밝히면서 모브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를 응원했는데요. 이후 네티즌들에 의해 직원들이 작성한 기업 평가 글이 재조명됐습니다. 전 직원 중 한 명은 "임원은 무능해서 물러나야 한다"고 적으면서, 갈등이 있었을 회사 내부 분위기를 짐작게 했죠.
기업 평가 글 속 내용들이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는데요. 챕터4가 아쉬운 반응을 자아낸 상황에서 간과할 수 없는 '루머'이긴 합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명확합니다. 핵심 개발진의 이탈로 생긴 공백이 체감되지 않게, 팬들이 사랑했던 기존 시리즈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공포와 몰입감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건데요. 챕터5가 마지막 이야기로 예상되는 만큼,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는 완성도 높은 스토리와 강렬한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챕터4가 살아 돌아온 허기 워기의 추격전을 암시하고 끝난 만큼, 챕터5는 강렬한 오프닝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파피 플레이타임'이 인디 공포 게임의 대표 프랜차이즈라는 명성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