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최근 ‘우클릭’ 기조를 내세우지만,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 근무 예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를 인정하는 반도체특별법을 놓고서도 우왕좌왕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모래주머니 하나라도 덜어줘야 국가 대항전으로 펼쳐지는 ‘칩워(Chip War)’에 대응할 수 있다는 애타는 호소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여야는 1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13일 기재위 전체회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K칩스법이 최종 처리되면 반도체 기업들은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되는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 상향 혜택을 받는다. 경기도 용인 기흥캠퍼스 반도체 R&D 시설에만 20조 원을 투자한 삼성전자는 4조 원의 세 부담을 덜 수 있다.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할 자금이 확충된다는 뜻이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웃을 수만은 없다. R&D 경쟁 판도를 바꿀 반도체특별법 입법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해서다.
핵심 골자인 주 52시간 근로 예외에 대한 여야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는 것이 화근이다. 이 사안에 대한 갈지자 행보로 실망을 넘어 분노까지 낳는 이재명 대표는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흑백논리에 익숙하다 보면 빨강이나 회색이 있는지 잊게 된다”며 “일정 범위 내에서 ‘주 52시간제’ 예외를 검토하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 주 4일제 추진과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고 했다. 주 52시간 근로 예외를 시사하다 지지층을 의식해 다시 좌향좌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데 대해 반박한 것이다. 그러나 둥근 사각형을 그릴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이나 진배없으니 기가 찰 따름이다.
노동계 환심을 사겠다고 기업에 족쇄나 채울 게 아니라 해외 사례라도 살펴봐야 한다. 미국은 주 40시간 법정 근로시간을 운영 중이지만, 연장근로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추가근로시간에 대해 정규 임금의 최소 1.5배를 지급하는 출구를 마련하고 있다. 또 고위관리직·전문직·컴퓨터직 등에 종사하면서 주 684달러 이상을 버는 근로자, 연 소득 10만7432달러 이상인 근로자는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시행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엔비디아와 같은 첨단 기업들의 핵심 R&D 인력들은 프로젝트 상황에 따라 주 7일, 새벽 2시까지 근무하고 있다.
반도체 경쟁국인 대만도 노사 합의로 하루 근무를 8~12시간 늘릴 수 있다. TSMC의 R&D 조직이 주 7일, 하루 24시간 활기차게 가동되는 배경이다. 반도체 부활을 꿈꾸는 일본도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통해 근로소득이 연 1075만 엔(9750만 원) 이상이면 근로시간 및 초과근로수당 등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첨단 분야 추격세가 무서운 중국의 연구실도 불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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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갈라파고스섬이다. 고임금 R&D 인력조차 경직된 근무제에 묶여 정시 출퇴근을 철칙으로 삼는다. 이러고도 경쟁력 있는 기업이 나오길 어찌 바라겠나.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노동 유연성과 규제 개혁이 없다면 ‘칩워’ 승리는 꿈속에서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제외 어떻게?’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 디베이트’를 주재하고 있다.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반도체 특별법의 핵심 쟁점인 연구개발 노동자의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을 정하기 위한 자리다. 연합뉴스](https://img.etoday.co.kr/pto_db/2025/02/20250212175443_2136074_1200_80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