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없는 작품학습에 ‘도용’ 목소리
AI 불법학습 행태에 예술인 반발
한국, AI 작품 창작성 논의 시급해
소더비와 함께 세계 최대 경매회사로 평가받는 크리스티스가 인공지능(AI) 미술품 경매를 개최한다. 이번 경매는 ‘증강지능(Augmented Intelligence)’을 주제로 뉴욕 크리스티 록펠러 센터 갤러리에서 2월 20일부터 3월 5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에는 다양한 국가의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참여한다. 작년 하반기에 서울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한 튀르키예 출신의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과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영국 출신 예술가·음악가·테크니션이자 스포닝AI의 창립자인 매트 드라이허스트(Mat Dryhurst) 등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또 그림 그리는 로봇도 현장에 등장한다고 한다.
경매시장에 인공지능 작품이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에 소더비 경매에서 AI 로봇 아이다(Ai-Da)가 그린 앨런 튜링의 초상화가 온라인 경매를 통해 132만 달러(약 18억5000만 원)에 낙찰된 바 있다. 경매 작품은 ‘AI God(인공지능의 신)’이라는 제목이 붙은 2.2m의 대형사이즈로, AI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앨런 튜링이 케임브리지대학교 킹스칼리지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초상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 15장 중 일부였다.
모델이 된 앨런 튜링은 영국 출신 암호 해독가로 2차 세계대전 때 활약한 수학자이자 초기 컴퓨터 과학자이다. 초기 디지털 컴퓨터 맨체스터 마크1의 개발에 참여한 앨런 튜링은 1950년에 인공지능의 개념을 다룬 논문을 발표해 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기도 전에 그 개념을 가장 먼저 이해했고, AI가 보편화된 미래를 예상한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또한 컴퓨터공학과 정보공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논문에서 제시한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화 실험인 ‘튜링 테스트’는 현재도 AI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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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역사적 인물인 앨런 튜링을 작품화한 작가인 아이다는 세계 최초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에서 따온 이름으로 단발머리 젊은 여성의 외형을 갖고 있다. 이 인공지능 로봇은 근현대 미술전문가인 에이단 멜러가 2019년 옥스퍼드대학교와 버밍엄대학교 소속 AI 전문가들과 협업해서 만들었다. 소더비에 출품한 그림은 한 장당 최대 8시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티스트는 이미지를 출력하는것이 아니라 카메라 눈을 장착하고 인간처럼 붓을 잡을 수 있도록 고안된 생체공학적 로봇 팔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낸다.
당시 소더비는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예술작품을 판매한 최초의 인간형 로봇예술가 아이다를 통해서 글로벌 미술시장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발표했었다. 아이다는 2022년에 폴 매카트니, 다이애나 로스 등 유명 가수들의 초상화를 그린것으로 유명해졌으며, 2023년과 2024년 AI 글로벌 정상회의에도 참여했다. 또한 지난해 국제전기통신연합(ITU) 포럼 기자회견과 영국 의회 청문회에도 참석하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소더비의 아이다 작품 경매의 경우 행사의 일부 작품이었던 데 반해, 단일 경매를 인공지능 작품만으로만 전체를 구성한 것은 이번 크리스티스의 행사가 처음인 셈이다. 소더비에서 진행된 아이다의 작품 경매 시에도 작금의 기술 발전이 윤리적, 사회적 의미를 고려하면서 인공지능과 컴퓨팅의 본질에 대해 사람들이 성찰하도록 유도해 나갈 것이라고 우려감을 설명한 바 있다.
올해 크리스티스 록펠러 경매에 대해서는 예술가들의 저작권 문제와 관련해 반발이 나오고 있다. 반대자들은 AI가 예술가들의 작품을 허락 없이 학습했다고 주장하며 경매 취소를 요청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이번 경매에 대해 인공지능 모델의 무작위 불법 훈련과 사용자들을 지원하는 행위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도용하는 것을 장려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인 리드 사우잔은 이번 경매에 출품되는 다수의 작품이 저작권 보호 작품으로 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불법훈련된 AI 모델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또한 AI 운영 기업들과 학습 모델들이 예술가들의 작품을 사전 허락 없이 함부로 사용해 상업적인 AI 이미지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공개 서한에는 3400명 이상의 서명이 포함되어 있다.
인공지능이 예술활동을 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지식재산권에 대한 논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식재산권은 발명, 상표, 의장 등의 산업재산권과 문학, 음악, 미술, 작품 등에 관한 저작권의 총칭이다. 우리나라 저작권법 제2조 제1호에 따르면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규정해 놨다. 대법원도 저작물에 대해 ‘표현의 방법, 형식 여하를 막론하고 학문과 예술에 관한 일체의 물건으로서 사람의 정신적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사상 또는 감정에 관한 창작적 표현물’이라고 정의했다.
인공지능과 관련해서는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이나 ‘소프트웨어 산업진흥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법적 규제를 규정하는 법률은 없다. 현행법에서는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에 의한 창작물은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아직 아닌 것이다. 반면 영국, 뉴질랜드, 홍콩, 인도, 아일랜드 등에서는 오래전부터 컴퓨터를 활용한 창작물을 개발자의 저작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 저작권법 제9조 제3항은 ‘컴퓨터에 기인하는 어문, 연극, 음악 또는 미술 저작물의 경우에 저작자는 그 저작물의 창작을 위하여 필요한 조정을 한 자로 본다’라고 규정해놨다.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도 인공지능 창작물 저작권에 대한 법적 제도 장치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만든 창작물을 과거의 법규로 논의하는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공지능 저작물 관련 법규가 신속히 마련되길 바란다.
이상아트 대표이사·백남준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