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지주·하나금융 뒤이어
양호한 실적에도 외국인들 외면
"기대 이하 주주환원" 원인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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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상반기 ‘밸류업 랠리’를 주도하던 외국인 투자자가 올해 들어 밸류업 대표 업종인 금융주를 대거 정리하고 있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이날까지 외국인은 KB금융을 3179억 원어치 팔았다. 이 기간 순매도 상위 3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들은 신한지주(-1825억 원), 하나금융지주(-1191억 원), 메리츠금융지주(-710억 원), 한국금융지주(-363억 원) 등의 물량도 쏟아냈다.
외국인은 ‘벚꽃 배당’을 앞둔 최근에도 매도세를 이어갔다. 금융주는 연 배당에 더해 분기 배당까지 진행하는 고배당 분야로 분류된다. 통상 배당이 4월에 몰려 있어 2~3월은 배당을 노리고 금융주 투자에 나설 ‘적기’로 여겨진다. 배당 선진화 정책으로 4분기 실적이 공시되는 2월에 배당 기준일을 2월 말, 3월 말로 정해 배당액을 알고 투자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당장 DG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이 28일을 배당 기준일로 정한 상태다. 그러나 임박한 배당도 외국인에게는 투자 유인이 되지 못했다. 이들은 2월 들어 KB금융(-3864억 원)을 전체 종목 중 가장 많이 던졌다. 신한지주(-1123억 원), 메리츠금융지주(-300억 원) 등의 자금 유출 흐름도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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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금융권이 양호한 실적을 거뒀음에도 외국인 외면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이런 성적은 더 뼈아프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지주)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8조8742억 원으로 2023년(17조931억 원)보다 10.4%가량 늘었다. 이는 역사상 최대 규모다.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자회사 편입도 외국인 마음을 돌릴 호재로 작용하지는 못했다. 삼성생명이 금융위원회에 삼성화재 자회사 편입을 신청한 다음 날인 14일 메리츠금융지주(3.16%), DGB금융지주(2.56%), KB금융(0.38%) 등 금융주에도 그 온기가 퍼졌다.
삼성생명이 이번 자회사 편입을 두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 추진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밸류업 간판 분야로 알려진 금융주까지 덩달아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날 외국인은 KB금융(-340억 원), 신한지주(-121억 원), 우리금융지주(-95억 원) 등을 팔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기대에 못 미치는 주주환원으로 불신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KB금융은 지난해 말 기준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13.51%이며 상반기 주주환원 차원에서 5200억 원 규모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겠다고 밝혔다.
정태준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CET1이 전 분기 대비 0.33%포인트 하락한 탓에 주주환원 여력이 크게 감소했다”며 “이에 상반기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는 당사 추정치인 1조 원의 약 절반 수준인 5200억 원에 그친다”고 분석했다.
외국인의 금융주 ‘팔자 일변도’는 지난해 말 이후 고조된 정치적 불확실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국정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며 밸류업 프로그램 지속성을 향한 의구심도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국내 금융주를 지켜보던 외국인들은 일본 은행주 상승 사례를 벤치마크해 국내 은행주를 매수했다가 비상계엄 사태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하자 순매도 공세를 펼쳤다”고 진단했다.
증권가는 금융주 투자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여전히 밸류업을 꼽고 있다. 조아해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금융주 투자 매력도를 결정짓는 요인은 주주환원 정책의 유효성”이라며 “시장은 원리원칙에 입각한 주주환원 정책이 당연히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