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신뢰 구축 큰그림
美함정 조달계획 기준 10년간
소형전투함 등 77척 참여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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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선업계가 미국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시작으로 향후 10년간 약 108조 원까지 커질 함정 신조 시장을 잡기 위해 기반을 다지고 있다.
1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미 해군은 이달 중 해상수송사령부(MSC) 7함대 MRO 사업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7함대는 한반도 주변 해역을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을 관할하는 함대다. 그간 7함대 MRO는 일본이 주로 도맡아 왔는데, 지난해부터 국내 조선사들이 MRO 사업을 본격화함에 따라 글로벌 수주전 양상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HD현대중공업은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지난해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에 입찰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지만 도크(선박 건조 공간) 부족 문제 등으로 불참했는데, 올해는 이번 수주전을 시작으로 2~3척의 사업을 따낸다는 목표다. 이와 관련해 울산 조선소 내 일부 도크를 배정한 바 있다.
지난해 국내 조선소 최초로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와 급유함 ‘유콘’ 등 2건의 MRO 사업을 수주한 한화오션도 입찰 참여가 유력하다. 한화오션은 올해 5~6척의 추가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함정 MRO는 신조보다 선가는 낮지만 꾸준한 수요를 바탕으로 중장기적 수성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조선업계의 새로운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떠오르는 사업이다.
전략적인 중요성도 크다. 함정 MRO를 통해 미국의 신뢰를 구축하고 향후 함정 신조 시장에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미 해군은 2054년까지 함정 390척을 확보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선 전투함 293척, 군수지원함 71척 등 총 364척이 추가로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 내 생산능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자국 조선업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존스법’ 등이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 동맹국인 외국 조선소에서도 해군 함정 건조를 가능하도록 한 법안이 발의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동맹국 중 함정 건조 이력이 있고, 낮은 비용으로 빠른 납기를 맞출 수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다.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안보와 기술 유출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초기 단계에선 대형 전투함보다는 소형 전투함, 군수지원함 등 전투 능력이 비교적 낮은 함정 수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미 해군의 함정 조달 계획 기준으로 향후 10년간 국내 조선업체들이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은 소형 수상전투함 21척, 군수지원함 32척, 전투보급함 24척 등 총 77척, 약 108조 원 규모로 전망된다.
정동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호주, 일본 등 기존 동맹국과 일본 조선사가 주요 일감을 수주하고 그다음으로 한국 조선사가 배분받을 확률이 80% 이상”이라며 “한국의 조선 역량이 뛰어나지만 호주, 일본 등의 동맹 레벨이 더 높고 우선순위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국내 조선업계의 예상 수주 규모는 21조 원 수준에 달한다.
현지화 전략에도 속도를 낸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 조선소를 인수하며 현지 생산 체계를 마련했고, HD현대중공업도 해외 거점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한국 조선업계와의 협력을 강조한 만큼 해군 함정 MRO는 물론, 예상보다 빠르게 함정 신조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