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R 규제 없고 심사 덜 까다로워
평균금리 연 4.53%…4개월째 하락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 강화에 나서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받지 않는 예·적금 담보대출(예담대) 잔액이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출창구가 좁아진 상황에서 생활자금이 급한 서민들이 예금까지 담보로 설정하며 대출을 받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17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예담대(청약저축 포함) 잔액은 6조26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6조1774억 원에서 올해 1월 5조8464억 원으로 줄었지만 2월 5조8488억 원으로 반등한 후 증가세다.
예담대는 예·적금과 청약통장 등 은행에 맡긴 자금을 담보로 설정해 대출을 받는 상품이다. 예금이나 적금을 해지하지 않고도 최대 95%까지 빌릴 수 있다. 수신 금리에 가산금리 1%포인트(p)를 더한 수준에서 대출금리가 결정된다. 신용대출이나 카드론보다 금리가 낮고, 대출 심사도 상대적으로 간단한 편이다.
예담대 잔액이 다시 증가한 주요 원인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 강화다. DSR 규제는 차주의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을 제한하지만, 예담대는 이 규제의 산정 대상에서 제외되는 만큼 ‘우회 대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관련 뉴스
은행권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이나 신용대출은 DSR 영향으로 문턱이 높아지자 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고객들이 비교적 심사가 덜 까다로운 예담대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은행 입장에서도 예담대는 담보가 명확해 부실 위험이 낮고,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말했다.
예담대 금리가 하락세인 점도 잔액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월 기준 신규 취급한 예금은행의 예담대 평균 금리는 연 4.53%로 전년 동기(4.93%) 대비 0.4%p 하락했다. 지난해 9월 이후 4개월 연속 내리막이다.
금리 부담이 줄어들면서 기존 신용대출 대신 예담대를 선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자영업자나 프리랜서, 고정소득이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절차와 낮은 금리를 이유로 예담대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담대는 한동안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급전 수요가 많은 경기 불황기에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예담대와 함께 불황형 대출로 꼽히는 카드론 잔액도 증가 추세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9개 카드사(롯데·BC·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NH농협카드)의 지난달 말 기준 카드론 잔액은 42조9888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7월 스트레스 DSR 3단계 시행을 앞두고 ‘막차 수요’가 예담대로 쏠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해 9월 스트레스 DSR 2단계가 시작됐을 당시에도 예담대 잔액은 한 달 새 1000억 원 넘게 급증한 바 있다. 이 같은 패턴이 올해 2분기에도 반복될 공산이 크다는 게 것이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예담대를 반복적으로 활용하면 가계의 자산관리 측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문제다. 과도한 차입 습관이 형성되면 결국 가계 경제가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예담대 수요 증가를 단순히 시장 흐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금융 취약계층의 유동성 위기가 구조화되고 있는 징후로 해석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고정 지출 증가, 고금리 지속 등으로 서민의 현금 흐름이 빠듯해지는 현실이 예담대 급증 현상에 투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담대는 일시적인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는 유용하지만, 상환 없이 반복적으로 사용할 경우 담보 자산 자체가 줄어들고 재무 건전성도 악화될 수 있다”며 “적금을 담보로 쓸 경우 미래 자산이 감소하기 때문에 단기 활용 후 원상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DSR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가계대출 규제의 사각지대가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