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컷] 신의 뜻인가, 권력의 싸움인가…영화 '콘클라베'

입력 2025-03-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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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주)디스테이션)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주)디스테이션)

교황 선출은 콘클라베(Conclave)라는 절차를 통해 이뤄진다. 라틴어로는 ‘열쇠를 잠근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교황 선출은 비밀스러우면서도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진행된다. 추기경들의 수기 투표로 이뤄지는데, 이들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교황을 선출한다.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기도와 토의를 거쳐 다시 투표를 진행한다.

에드워드 버거가 연출한 영화 ‘콘클라베’는 바로 이 투표 전후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점잖게 말하면 ‘투표 전후의 과정’이고, 거칠게 말하면 ‘진흙탕 싸움’이다.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들의 권력 다툼과 뒷골목 양아치들의 영역 다툼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성스러운 장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치열한 암중모색의 정치적 수 싸움이 영화의 주요 볼거리다.

영화는 교황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작한다. 교황의 선종으로 관계자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한 추기경이 혼자서 체스 게임을 하는 장면이 뒤따른다. 이 같은 편집을 도식적으로 해석하면, 교황의 죽음으로 일종의 게임, 즉 선거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선거와 게임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두 분야 모두 경쟁과 승리, 전략과 규칙이라는 요소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선거 과정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게임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어서다. 상대 팀을 제압하고 고득점을 획득해야 하는 게임과 유세와 토론 등 갖가지 이벤트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선거는 모두 관람자들(혹은 유권자들)에게 긴장과 재미를 유발한다. 특히 선거는 인간의 본능과 사회적 역학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드라마처럼 극적인 순간들이 자주 등장한다.

가령 영화에서 유력한 교황 후보자로 거론된 마데예미 추기경을 저지하기 위해 트랑블레 추기경은 그의 과거 성추문을 공론화하는 작업을 편다. 일종의 네거티브 전략이다. 득표를 위해서 성소수자 포용 등 개혁적인 메시지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오가는 장면도 나온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정책이 아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지역감정이 만국의 정치적 갈등 요소인 것처럼, 추기경들 역시 대륙별 혹은 사용하는 언어권별로 모여 상대를 힐난한다. 교황청의 발전을 위해 정책적으로 단결한 계파가 아닌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계 추기경에 대한 호불호, 로마 출신 추기경에 대한 역차별 등 온갖 이슈가 난무한다. 실제 정치인의 스캔들이나 내부 고발처럼 묘사되는 예상치 못한 반전도 묘미다.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주)디스테이션)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주)디스테이션)

영화에는 추기경들이 교황 선출을 위해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드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거리낌 없이 담배를 태우는데, 카메라는 이 모습을 사진 이미지처럼 하나씩 나열한다. 일종의 고발적 이미지다. 추기경들을 멀리서 부감으로 포착하는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어딘가 의뭉스러운 추기경들을 바라보는 절대자의 감시적 이미지로 느껴지는 장면이다.

고발적이면서 감시적인 이미지들의 연쇄 속에서 영화는 특정 계파에 속해 있지 않은 제3지대 인물을 교황으로 선출하면서 끝난다. “가장 두려운 죄는 확신”이라는 대사처럼, 영화는 특정인이 교황으로 선출될 것이라는 확신을 끊임없이 배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같은 방식은 정치와 확신(혹은 종교와 믿음)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숙고하게 한다.

정치는 확신의 게임이다. 정치인은 비록 지켜지지 않더라도 확신 있는 공약과 메시지로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하고, 결집력을 강화한다. 반면 과도한 확신은 변화와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배반의 서사가 작동한다. 유력한 교황 후보자들이 차례로 낙마하면서 영화는 선거와 게임, 의심과 확신의 영역을 뒤섞는 서사 전개 방식을 선보인다.

보이지 않는 존재와 힘을 신뢰하는 종교적 믿음도 위 논의와 맥이 닿아있다. 종교라는 체계화된 신앙 구조와 믿음이라는 개인의 내면에서 비롯한 확신은 불가분의 관계일 뿐만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영역이다. 다시 말해 종교는 믿음을 통해 성립되고, 믿음은 종교를 통해 강화된다. 종교가 믿음을 통해 유지되고 전파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온화하게 웃지만, 속으로는 치밀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듯한 배우들의 표정 연기도 감상 포인트다. 관객의 심장을 적절하게 조이고 풀 줄 아는 사운드의 활용 역시 인상적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이자 제8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은 정치 스릴러 ‘콘클라베’는 현재 국내에서만 누적관객수 20만 명을 모으며 흥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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