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인상 최소·상여금 축소 대응 계획
노사 통상임금 관련 갈등·소송 증가 전망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고 판결한 지 100일을 맞은 가운데 산업 현장 일대에서는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곳의 기업 중 6곳은 통상임금 판결 여파로 경영 환경에 상당한 부담을 겪거나 위기 상황에 놓였다.
30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조건부 상여금이 있는 기업 170여 개사를 대상으로 한 ‘통상임금 판결 100일, 기업 영향 및 대응 긴급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3.5%는 ‘통상임금 충격이 상당한 부담이 되거나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2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통상임금 판결 이후 약 11년간 현장에서 통상임금 판단요건으로 작용해 왔던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 중 고정성 요건을 폐지하면서 재직 조건이나 근무 일수 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 등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판결 이후 100일을 맞은 가운데 산업 현장에서는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대기업은 때아닌 줄소송을 겪고 있으며, 중소기업은 인건비를 줄일 아이디어에 대해 고안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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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심화되는 문제도 불거졌다. 실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후 임금 상승률이 어떻게 되냐를 질문에 대해 대기업 55.3%는 ‘5% 이상 임금상승’을, 23.1%는 ‘2.5% 이내 상승’된다고 응답했다. 반면 중소기업은 25%가 ‘5% 이상 임금상승’을, 43.4%가 ‘2.5% 이내 임금상승’된다고 답했다.
한 자동차 부품 제조중소기업 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해 기업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더니 이제는 법원이 종전 판결에 맞춰 잘 줘왔던 통상임금을 법에 미달한다며 임금체불 기업으로 만들어 버렸다”며 “요즘 정말 기업을 경영할 맛도 안 나고 이렇게 힘들게 경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늘어난 인건비 부담에 기업들은 임금인상을 최소화하고 정기상여금을 대체하는 동시에 신규인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응방안을 고안하고 있다. 대응책을 묻는 말에 대해 기업의 32.7%가 ‘임금인상 최소화’라고 답했고, 정기상여금 축소 또는 대체(24.5%), 시간 외 근로시간 줄일 것(23.9%), 신규인력 줄이는 등 인건비 증가 최소화(18.9%), 통상임금에 산입되지 않는 성과급 확대(17.0%) 등의 순이 뒤를 이었다.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한 기업도 21.4%에 달했다.
다만 기업들의 대응이 통할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는 올해 임금단체교섭지침 등을 통해 대법원 판결에 따른 통상임금 산입범위를 쟁점화해 기존 노사합의를 무효로 하고 재합의를 추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대기업 노조들의 줄소송 움직임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올해 임금교섭의 주요 의제는 통상임금 산입범위가 될 것으로 보이며, 당장 현실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잠재된 소송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번 판결을 통해 재정적, 법적 위험에 노출된 기업의 입장에서는 근본적 해결을 위해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올해 가장 우려되는 노동시장 현안을 묻는 질문에 기업의 47.2%는 ‘최저임금 인상’을 꼽았다. 이어 중대재해에 대한 법원판결(35.2%), 주4일제 등 근로시간 단축(34.0%), 60세 이상 고용 연장(19.5%), 노조에 경도된 노동입법(19.5%) 순으로 나타났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글로벌 지형이 바뀌면서 고강도의 혁신이 필요한 상황에 중소기업 대표들은 통상임금 컨설팅까지 받는 형국”이라며 “근로조건 결정은 노사합의라는 기본 원칙에 근거해 법과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