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 성숙해져야"

입력 2010-07-2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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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26일 한국 남성의 베트남 신부 살해 사건과 관련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을 성숙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KBS1라디오와 교통방송,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해 방송된 제44차 라디오ㆍ인터넷 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슬프고 안타깝기 그지없다"며 "결혼 이주 여성과 다문화가족은 장기적으로 우리 문화를 다채롭게 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바탕"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우리 모두가 바깥에서 들어온 문화와 사람을 잘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면서 "국가정책도 개방성을 추구하면서 세계를 향해 열린 정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라디오연설 전문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국민 여러분 모두,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는 즐거운 휴가를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2년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고생한 공직자 여러분도 올해는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꼭 가기를 권합니다.

오늘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 일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불과 스무 살의 젊은 베트남 여성이 이곳에 시집온 지 8일 만에 뜻밖의 변을 당했습니다.

탓티황옥 씨는 결혼중개업체의 주선으로 한국인 남성을 만나 베트남 현지에서 식을 올리고 바로 입국했습니다. 그러나 정신질환이 깊은 남편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고인은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가족을 위해 일하며, 월급의 대부분을 집으로 보내던 효녀였습니다. `행복하게 잘 살겠다'는 그 말이 고국의 아버지와 전화로 나눈 마지막 말이라고 합니다.

슬프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우리나라에 오는 결혼이민자는 이미 18만 명을 넘어섰고, 그 자녀만도 12만 명이 넘었습니다.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는 혼인 남성 10명 가운데 4명이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 외국 출신 신부를 맞고 있습니다. 다문화 가족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의 인식도 성숙해져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한 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또한 일부 중개업체들의 그릇된 인식과 관행 역시 바뀌어야 합니다.

정부는 이번 기회를 통해 개선방안을 강구하고자 합니다. 작년 10월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훈센 총리는 저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습니다. 한국에 사는 캄보디아 출신 이주여성들에 대해서 `대통령님의 며느리와 같이 생각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동안 다문화 가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정책을 수립해 왔지만, 과연,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정말 내 며느리라고 생각하면서 세심한 애정을 담았던가 저는 되돌이켜 봅니다.

훈센 총리의 이야기를 듣고, 한편, 미안함을 느꼈고, 또 한편, 새로운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러한 가슴 아픈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유가족을 직접 만나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출국 시간 때문에 직접 만나지는 못했습니다만, 베트남 주재 대사를 고인의 친정집으로 보내 애도의 마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남녀가 깊은 사랑으로 맺어져 결혼하고,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주 결혼 신부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생각으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신부의 고국 국민들에게 아픈 상처를 주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6월 말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현지 한인 동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지금부터 100여 년 전인 1905년 고국을 떠나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던 애니깽의 후손들이었습니다.

저는 고난에 찬 동포들의 역사를 들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2만 명 가까운 우리 국민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광부로, 간호사로 독일에 갔습니다.

모든 것이 낯선 만리타향에서 그분들이 겪은 어려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분들이 흘렸던 눈물은, 오늘날 우리 곁의 이주여성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흘리는 눈물과 같습니다.

그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 한,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져도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부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7년간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한 박경옥 씨는 귀국해서 정년퇴직을 한 뒤에도, 아픈 외국인 근로자 소식을 들으면 어디든 달려가 보살폈습니다.

오늘 우리 곁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바로 어제의 우리였다는 사실을, 박경옥 씨는 잘 알았던 것입니다. 외식사업을 하는 한 사회적 기업에서는 이주여성들이 각자 자신의 모국 음식을 만들어서 식당 운영에도 큰 역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몽골 출신 결혼 이주여성인 이라 씨가, 광역의원 비례대표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꿈을 펼쳐나가는 이주여성들이 참으로 대견합니다.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정부 정책도 점점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특히 전국의 171개 다문화가족 지원센터는 결혼 이주여성들의 정착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결혼 이주여성과 다문화가족은 장기적으로 우리 문화를 다채롭게 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바탕입니다. 아버지의 나라와 어머니의 나라 말을 모두 유창하게 구사하고, 양국 문화의 감수성을 고루 갖춘 한국인은 유능한 글로벌 인재가 될 것입니다.

역사를 돌이켜봐도 고대 로마에서 근현대의 영국과 미국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문화에 대한 관용이 살아 있을 때 국운이 상승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1세기는 상품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자유롭게 오가는 시대입니다. 우리 동포 700만 명이 해외에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이주민이 우리나라에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역사상 번영했던 나라들은 모두 이질적인 문화를 소화하고 융합을 이뤄냈습니다.

고유한 문화와 바깥에서 들어온 문화가 섞여서 크게 융성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바깥에서 들어온 문화와 사람을 잘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국가 정책도 개방성을 추구하면서, 세계를 향해 열린 정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인들이 '코리안 드림'을 실현할 수 있는 희망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지금 연일 날씨가 무덥습니다. 묵묵히 땀 흘려 일하는 모든 분들이 보람을 느끼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저도 함께 땀 흘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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