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롭게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됐던 현대건설의 새주인 찾기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채권단이 요구한 인수자금 증빙자료 제출을 거부하면서 이번 논란의 해결점을 찾기 어렵게 돼 점차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29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채권단이 지난 28일 낮까지 요구한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치금 1조2000억원의 대출계약서 제출을 거부했다. 입찰규정상 해당 자료를 제출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채권단의 추가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대그룹은 이날 “응해야할 이유가 없다”며 제출을 거부한데 이어 “현대자동차그룹을 상대로 5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29일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하겠다”고 발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채권단은 오늘(29일) 운영회의를 열어 대응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양해각서(MOU) 시한 연장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29일 회의를 열어 향후 대책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가능성에는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이 대출계약서 제출을 거부함에 따라 채권단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29일 대출계약서 확인 없이 MOU 체결 △MOU 시한 연장 후 자금출처 지속 확인 △현대그룹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박탈 등 세 가지로 좁혀지고 있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논란이 되고 있는 인수자금 문제를 그냥 넘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MOU 체결 시한이 29일인 만큼 채권단 운영회의에서 어떤 결론이든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다만 채권단으로서는 입찰규정상 자료소명을 요구할 근거가 없는 상황이어서 그대로 MOU를 맺기도, 그렇다고 우선협상대상자 지정을 취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MOU 체결을 강행할 경우 졸속매각이라는 안팎의 비판이 부담이고, 우선협상대상자를 갈아치울 경우 절차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단 MOU를 체결하고 내용에 ‘본계약 체결 전까지 현대그룹이 대출계약서 등 자금 출처를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채권단이 가장 무난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확실한 해결책이 아니라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싸고 금융감독당국이 보다 명확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사자 간 법정다툼까지 이어지면서 시장질서가 혼탁해지고 있다”면서 “금융당국의‘교통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채권단의 자금증빙자료 제출을 거부한 데 대한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현대그룹은 이에 대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하고 난 뒤 추가서류 제출은 할 수 있다”며 “하지만 그 전에 법에 정해지지 않은 채권단 요구까지 수용할 수는 없다”며 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이와 함께 현대그룹이 현대차그룹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5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양 측의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지난 25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며 “아울러 29일 오전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현대차그룹은 이에 대해“입찰규정에 따른 절차가 진행되는 상황에 예비협상대상자로서 공식입장을 내놓기 어렵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