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메모리(시스템LSI) 반도체를 생산하는 국내 중소기업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 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태블릿PC인 갤럭시탭의 드라이버IC, 타이밍콘트롤러 등의 시스템LSI 반도체 제품은 대만산이다.
위기는 여기에 있다.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는 급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올해 태블릿PC가 지난해에 비해 64%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칫 새롭게 열리는 과실을 모두 해외 반도체 업체에게 내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 갑절인 18년이 흐른 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확고한 선두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앞선 공정 기술력과 대규모 투자 능력으로 가능했다.
일본은 지난 1990년대부터 메모리 반도체에서 시스템LSI로 중심축을 이동했다. 매출의 대부분도 이 분야에서 이뤄진다. 한국은 매출의 90% 이상이 메모리다. 시스템LSI 분야의 한ㆍ일간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 업체들은 전자제품의 모바일화 경향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최근 세계적인 네트워크 업체인 미국의 정고와 컴퓨터 연결 장치인 USB 관련 업무협약을 맺었다. 애플의 아이패드 등에 이용되는 USB 장치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모바일 시장이 커질 수록 반도체 제품은 다양해진다. PC의 D램은 규격화돼 있다.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시스템LSI는 제품마다 사양과 규격이 모두 다르다. 고객에게 최적화된 제품이 필요하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선 업체간 상호협력을 통해 남보다 빠른 개발이 필수조건이다.
안두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차장은 “PC시대에서 모바일시대로 가면서 무턱대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패러다임에 맞는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지난 6일 열린 가전전시회(CES)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최적화된 차세대 윈도우 제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반도체 설계회사인 ARM과 협력할 방침이다.
PC 시장에서 절대 강자였던 인텔은 모바일 기기의 비중이 커지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지난해 보안전문 소프트웨어업체인 맥아피를 인수하며 모바일 시장에서도 절대 강자로서 자리매감하려는 것이다. 자연 차세대 모바일 시장을 대비한 업체 간의 합종연횡이 치열하다.
국내 반도체 업계가 10여년 전부터 ‘시스템LSI’를 외쳐왔지만 쉽사리 추격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투자를 포기할 수는 없다. 변화가 빠른 만큼 기회도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 발 앞서 미래 사업을 전망하고 과감한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의 대표 시스템LSI 반도체 설계 중소기업인 실리콘웍스의 한대근 대표는 “기술의 발전 선상에서도 투자는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며 “시기를 맞추면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장성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비메모리는 제품의 조류에 따라 수요가 만들어진다”며 “향후 어떤 흐름이 올지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꾸준한 기술 투자와 연구개발 역량을 갖춰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국내 업체들이 메모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메모리에 대한 투자가 적극적이지 못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비교적 언제쯤 어떤 제품이 나올 지 예측하기 쉬운 시장이다. 반면 시스템LSI는 시장을 예측하거나 창출해 내야 한다.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크다. 시장이 이미 안정적인 구도가 짜여진 상황이어서 가시덩쿨을 헤치고 발을 뻗는 것이 주저될 수 밖에 없다.
시스템LSI 시장은 지난해 2352억7700만달러로 메모리 시장(687억2900만달러)의 세배가 넘는 규모다. 시장조사기관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메모리 시장 규모는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반면 시스템LSI 성장 추이는 더욱 가파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