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군대 이야기만큼 예능에서 친숙한 소재는 없다. MBC ‘우정의 무대’는 “제 어머니가 맞습니다!” 하고 외치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전에 쟁쟁하게 남아있는 군 소재 프로그램이다. 쇼 형식으로 연예인들과 병사들,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어우러져 웃음과 감동을 주던 프로그램이었다. KBS ‘유머 일번지’의 ‘동작 그만’이라는 코너는 콩트 코미디로 풀어낸 군 소재 이야기다. 명령 체계의 군 생활을 웃음의 코드로 잡아넣은 이 ‘동작 그만’에 대한 화제는, 개그맨 이경래가 “당시 국방부에서 항의가 올 정도”였다고 말한 대목에서 미루어 알 수 있다.
‘푸른거탑’은 시트콤 같은 형식에 패러디라는 무기를 장착했고, ‘진짜 사나이’는 연예인 리얼리티쇼 형식을 차용했다. 즉 군대 이야기의 성패는 소재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이야기들. 그래서 흔해 빠질 수밖에 없는 군대 이야기의 관건은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할 것인가가 된다.
‘푸른거탑’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패러디다. 제목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하얀거탑’의 패러디는 ‘푸른거탑’의 백미다. ‘하얀거탑’의 상징처럼 깔리는 OST의 “짠짠짜자잔 -”하는 음악만으로도 ‘푸른거탑’은 충분히 웃음을 만들어낸다. ‘푸른거탑’의 군대 상황이 ‘하얀거탑’의 의사들 상황을 패러디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유사한 ‘서열’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하얀거탑’이 그 서열의 권력구조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다룸으로써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면, ‘푸른거탑’은 그 서열 사회를 풍자하고 과장함으로써 웃음을 준다. 군대 특유의 권력구조가 해체될 때 생기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반면 ‘진짜 사나이’는 연예인들이 진짜로 군대에 입소해 똑같이 생활하는 다큐 예능 형식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삼았다. 처음 그저 시늉만 내면 되는 체험일 거라 착각했던 연예인들은 이 실제상황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군인이 되는 것을 심지어 ‘꿈’이라고까지 말하며 ‘람보 놀이’를 하던 샘 해밍턴은 실제 군대 체험에서 입에 붙지 않는 관등성명을 대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이 체험이 장난이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 시청자들은 ‘진짜 사나이’의 진짜 군대 이야기에 시선이 꽂힐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는 군대 이야기가 가진 특수성이 작금의 인기 요인이라고 꼽는다. 이른바 추억과 자극이다. ‘진짜 사나이’에 군대리아(패티와 잼을 섞어 먹는 군대식 햄버거)가 나왔을 때 군필자들은 아마도 자신이 겪었던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한편 군대 이야기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남자 예능에서도 가장 끝단의 야생을 보여줄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물론 정글 같은 공간이 더 힘들 수도 있지만, 군대는 몸만 힘든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힘든 곳이다.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명령체계의 조직이 주는 스트레스는 어쩌면 육체적인 고통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추억이든 자극이든 군대 이야기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에 대한 공감대다. 군대 소재라는 군경험자들에게 특화될 수 있는 이야기를 군 미경험자들에게도 소구하는 힘이 된다. 결국 군대 이야기가 예능에서 다시 꽃피울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흔히들 말하는 이제 더 이상 지구 위에 새로운 소재는 없다는 예능 제작자들의 한탄에 대해 이 군대 소재 예능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문제는 어떤 걸 얘기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얘기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