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철강업계의 주요 화두는 ‘위기’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요는 위축됐지만, 공급량은 오히려 늘어나면서 영업이익은 속절없이 반토막 났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중국 철강사들의 저가 공세와 원화 강세로 철강업계는 몸살을 앓았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하면서 원가부담이 가중됐다. 불안한 형국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사의 표명,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 별세 등 오너 리스크도 불거졌다. 여기에 잇따른 현대제철의 인명사고는 철강 산업현장의 안전 불감증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수출·수입, 물량·금액 모두 하락=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는 현재 진행형이다. 2011년 그리스발 경제위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철강업계의 올해 실적은 지난해보다 더 나빠졌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철강재 수출물량과 금액 모두 하락했다. 수출물량은 2659만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6% 감소했다. 수출금액도 250억6500만 달러(약 26조3800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12.5% 하락했다.
수입실적도 마찬가지다. 올해 11월까지 수입물량은 1778만5000톤, 수입금액은 171억2600만 달러(약 18조371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 8.4% 감소했다. 수출과 수입이 모두 감소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철강 수요가 줄며 거래량도 같이 줄었다는 의미다. 철강산업 전반에 경색화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되는 요소다.
특히 중국이 지속적인 설비 확장으로 생산량을 늘리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요가 줄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빚어졌다. 공급과잉 현상과 경기침체는 국내 철강업계에 직격탄이 됐다.
재정악화를 겪고 있는 동부제철은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에 당진항만 유동화와 인천공장 매각에 나섰고 내년에는 유상증자와 동부특수강 IPO를 추진키로 했다. 이를 통해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해 부채를 절반으로 줄일 계획이다.
◇엎친 데 덮친격… 오너·전기요금·사고 악재도= 글로벌 시장 상황 외에도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올 2월에는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이 별세하면서 현재 이순형 회장이 그룹 수장의 자리를 메우고 경영 정상화에 매진하고 있다. 또 지난달에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철강회사들의 오너 리스크가 도마에 올랐다.
사망 사고도 이어졌다. 현대제철은 이달 초 대국민사과와 함께 안전종합대책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협력업체 근로자가 또다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곤욕을 치렀다. 올 한해만 현대제철 당진사업장에서 모두 9명이 숨졌다. 지난해까지 합칠 경우 사망자는 13명으로 늘어난다. 잇달아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고용노동부는 현대제철을 안전관리 위기사업장으로 지정하고 특별감독을 선포했다.
지난달에는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하자 원가부담이 가중된다며 철강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가 발표한 산업용 전기요금 6.4% 인상 시 철강업계는 2688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된다. 철강업계는 지난해 4조2000억원의 전기요금을 냈다.
◇품질경영으로 내년 기약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국내 철강사들은 공격적 마케팅보다는 재무구조 개선, 품질개선 경영에 초점을 맞추고 내년을 대비 중이다. 동국제강은 올 초 40만~50만톤의 생산 감축계획을 발표했고, 원가절감을 위해 4개 사업장의 노후설비를 전부 교체했다. 또 원가절감을 위한 전략적 생산기지인 브라질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고 있다.
포스코는 최근 철강원료 개발에서 제조·가공 그리고 판매 네트워크를 통합하는 철강 밸류체인을 완성해 철강부문을 안정시켰다. 현대제철은 자동차용 강판 개발·생산에 특화된 현대하이스코의 냉연부문을 합병했다. 이로써 현대제철은 현재 자동차에 들어가는 강판의 99%에 해당하는 강종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지난 4일 열린 철강업계 합동 송년회 자리에서 오일환 한국철강협회장 상근부회장은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던,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철강업계의 2013년이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