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의 명문가 자녀교육 따라잡기]돈을 덕으로 바꾸는 지혜 '경주 최부잣집'

입력 2013-12-1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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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2012년 12월 21일 경주힐튼호텔에서 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토론회장은 600명의 사람들로 열기가 가득했다. 여느 학술대회와 달리 촌부와 촌로 등 장삼이사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이 학술대회는 우리나라에서 수백년 동안 존경받는 부자로 꼽힌 경주 최부자 학술 심포지엄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식당으로 참가자들이 이동했다. 600여 ‘과객(?)’들이 길게 행렬을 이룬 채 뷔페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나 또한 그 행렬의 일원이 되었다. ‘경주시민, 또 전국에서 찾아온 과객들이 이렇게 많이 모일 수 있다니….’ 나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1947년 이후 사라졌던 최부잣집의 사랑채 온정을 마치 65년 만에 다시 보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덕의 힘’을 실감했다. 최부자의 후손인 최염(경주최씨중앙종친회 회장)씨는 “어쩌면 9대 진사 12대 부자였던 경주 최부잣집의 ‘마지막 과객 접대’인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경주 최부자는 1947년 9월 22일 대구대 설립에 전 재산을 기부함으로써 400년에 걸친 부의 대물림을 마감했다.

최부잣집의 토대를 세운 최국선(1631~1681)은 처음부터 존경받는 부자는 아니었다. 최국선도 처음에는 당시 관행대로 8할의 소작료를 받거나 보릿고개에 양식을 빌려주고 2배를 받는 장리를 놓았다. 어느 날 도적질을 일삼던 ‘명화적’이 횃불을 들고 집에 쳐들어왔다. 횃불을 들고 집에 쳐들어왔다는 것은 신분 노출을 작심한 것이다. 최국선은 이때 큰 충격을 받았다. 명화적에는 소작농과 그 아들들, 종들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은 양식은 안 가져가고 장리를 빌려간 증표인 채권 서류들만 가져갔다.

명화적의 침입을 받은 다음 날 아침 친척들과 가복들은 명화적에 가담한 배은망덕한 놈들을 잡아 처벌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모두 처단해야 한다는 말에 최국선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다. 남은 채권 문서를 그냥 모두 돌려주어라. 도적질한 것 역시 불문에 부친다.” 최국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80% 이상 받던 소작료도 50%로 전격 인하했다. 이는 당시엔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위기를 맞자 최국선은 부를 더 ‘축적’하는 데 골몰하지 않고 그 반대로 부를 ‘분배’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리더에게 요구되는 결정적 국면 전환이었다. 이로 인해 경주 최부잣집은 이후 300년 동안 새로운 부자의 패러다임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결코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것은 눈앞의 이익을 탐하는 인색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반발 심리로 인해 되레 자녀를 방탕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러시아의 거장 도스토옙스키가 그랬다. 돈이 생기면 펑펑 썼고 도박으로 날렸다.

덕은 오래가지만 돈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부자라면 돈을 덕으로 바꿀 줄 알아야 하고, 특히 이를 자식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최염 옹은 할아버지 비서 역할을 하면서 직접 보고 자랐다. 직접 가르쳐주지 않아도 등 너머로 배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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