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의 해를 여는 구정이 코앞으로 다가온 23일 오후. 서울 시내 재래시장이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다. 그러나 추운 날씨와 함께 대형 할인점과 인터넷쇼핑 등에 밀려 기대만큼의 호황을 누리지는 못할 것으로 보여 상인들의 표정은 착잡했다.
기자가 찾은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은 10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제사용품과 전 등 온갖 먹을거리가 유명한 시장으로 상인들의 표정은 명절 대목을 맞아 기대감이 가득했다.
시장에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가 코 끝에 맴돌았다. 전 집을 운영하는 최모(38)씨는 "아직은 주문이 밀리지 않지만 설을 전후해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예약이 몰려들 것"이라며 "상인회 차원에서 각종 할인과 경품증정 등의 행사를 통해 손님을 끌어모은다고 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비교적 규모가 큰 광장시장에는 상인들 내에서도 양극화된 경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먹거리로 가득한 시장 초입 상인들은 붐벼대는 손님들 사이에서 넘쳐나는 양념재료들을 미련없이 버리며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정작 설 대목을 기대하는 제수용품점 앞은 손님들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다.
홍삼 등 건강식품류를 판매하는 김모(60)씨는 "설이 돼도 예전만큼의 대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그래도 구정 명절은 시장상인에게 최대의 대목"이라며 넉살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양모(63)씨는 "하루 10시간을 꼬박 일해도 한달 수입은 100만원 남짓이다. 먹거리 거리는 북적이지만 정작 장을 보는 손님들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최종철 시장상인총연합회 사무국장은 "광장시장은 한복과 먹거리가 유명한 시장이다. 그나마 먹거리를 찾는 손님은 많지만 예년만은 못하다. 한복거리는 텅텅 비어있는 곳이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그는 "상인회 차원에서도 지원책을 고심하며 각종 행사를 열고있지만 역부족이다. 시장이 살려면 무엇보다 상인들의 인식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시장 입구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강모(46)씨는 "작년에도 설 대목에 손님이 없어 힘들었는데 올해는 그보다도 못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정리를 마친 김 씨는 칼바람을 피해 옷깃을 올리고 골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장 안쪽은 입구보다 더 한산했다. 오후 7시 30분이 되자 곳곳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상인들이 눈에 띈다. 팔다 남은 생선을 창고에 다시 넣던 서모(52)씨는 "손님만 더 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장사를 하겠지만, 날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인적이 드물다"며 "구정이 와도 상황이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썰렁한 바람보다 시장 상인들의 마음을 허전하게 만드는 것은 또 있다. 김 사무국장은 시장골목이 북적이던 시절을 기억하는 상인들에게 휑한 골목만큼 가슴이 아린 풍경은 없다고 했다.
"500명의 경동시장 상인들은 소비자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립습니다. 소비자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