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방송된 모 통신사 CF에서 남자 주인공은 회사에서는 만년 대리로, 밤에는 대리운전기사로 살아간다. 대리운전 현장에서 그와 우연히 만난 회사 팀장은 “낮에도 대리, 밤에도 대리입니까”라고 운을 떼며, 이제는 두 개의 ‘대리 인생’을 모두 끝내 보자고 격려한다.
이 CF를 보며 ‘내 인생이 저것보다는 낫겠지’ 하며 안도한다든지, ‘그래, 열심히 살
신이 부러워하는 직장. 명품 옷에 외제차. 술값을 아끼지 않고, 미녀들에 둘러싸여 인생을 즐기는 C씨는 쿨한 인생의 표상이다. 그런 그가 행여나 대리운전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만취했지만, 많이 안 취했다”고 큰소리치며 음주운전에 나섰다.
그러나 그는 이내, 평소 ‘조류’로 폄하하던 경찰의 음주단속에 걸리고 만다. 술마실 때는 열광했던 외침, "
우리는 노출되어 있다. 노출된 몸에 노출되어 있다. 매스미디어나 SNS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벗은 몸에 경도되고 있다. 특히 주요 일간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인터넷 언론에서는 ‘헐벗고 굶주린’ 여성들이 남심을 집어삼키고 있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선정적 광고가 기사보다 화면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기이한 창조경제(?)의 현장이 펼쳐지고 있다.
안 볼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 영어 속담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인용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고통은 덜 받으면서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 격언은 사실 굉장히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고통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다. 크게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지금 대한민국은 사바나 초원이다. 지구 온난화나 그에 따른 전력난 때문이 아니다. 부쩍 도심에 자주 출현하는 멧돼지처럼, 서울대공원에서 일제히 동물들이 탈출했기 때문도 아니다. 넘쳐나는 ‘초식남’ 때문이다. 연애나 결혼 따윈 관심 없는, 건조한 사회에 최적화된 신종 인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경향을 반영하듯 MBC의 ‘나 혼자 산다’가 인기다.
직장인 우희덕(35)씨는 최근 차량용 내비게이션 대신 스마트폰 앱을 주로 사용한다. 이미 내비게이션이 차량에 장착돼 있지만,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통해 실시간 교통 정보를 빠르게 반영하고 블랙박스 기능도 함께 지원하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 시장이 변하고 있다. 차량 앞 유리에 장착하는 내비게이션보다는 차량 내부 매립형 내비게이션으로, 또 매립형보다 스마트
‘슈퍼맨’은 더 이상 기자가 아니다. 최근 슈퍼맨 시리즈의 후속작인‘맨 오브 스틸’에서 그는 몇 십년간 유지한 직업을 버렸다. 정확히 얘기하면 주인공이 직업을 갖기 전의 얘기지만, 감독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영웅으로서 그를 기자로 만들어야 하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빨간 팬티를 벗어던진 슈퍼맨의 옷차림처럼 변해버린 언론을 보면 말이다.
이 사회는 ‘슈퍼맨’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온라인에서 사람들의 관계를 형성해주는 매체다. 명목적으로는 그렇지만, 사실은 ‘소식 배달 서비스’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가 과거의 그것과 대비되는 점은, 상대방의 페이지를 일일이 찾지 않아도 그들이 올린 내용을 볼 수 있고, 자신의 소식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에 과도한 ‘서비스’가 추가되고
스마트폰 없는 세상은 어떨까. 비틀즈의 ‘Imagine’ 선율에 맞춰 그런 세상을 상상해본다. 쉽지 않다. 이과수 폭포처럼 쏟아지는 통신사 광고와 신제품 폭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손끝의 세계. ‘바보 상자’와는 달리 비판하기 힘든 이름을 가진 태생적 신분은 가히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다.
불과 십수 년 사이, 스마트폰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은
멘토들이 넘쳐난다. ‘88만원 세대’, ‘반값 등록금’, ‘취업 대란’ 등의 키워드를 탄생시킨 시대의 불안을 반영하듯 종교계, 학계, 정계, 문화계에 많은 이들이 자천타천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멘토서(書)가 유행처럼 번지고, 지상파에서는 강연 형식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또 대학가에서는 토크콘서트 방식의 멘토 담론이 유력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창의성’, ‘개성’, ‘독창성’을 외치는 시대지만 어쩐 일인지 사람들은 ‘국화빵’을 나눠먹은 듯 비슷해지고 있다. ‘트렌드’라는 상업적 몰개성화 앞에 사람들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차를 타고,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같은 성형외과에서 성형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똑같아 보이는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