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4월 통화정책의 수장으로 취임한 지 7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존재감이 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했다. 오히려 이 총재보다 3개월 더 늦게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에 더 비중을 두고 시장금리가 등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리정책의 결정권자이자 책임자인 이 총재가 ‘금리 주도권’을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3일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이달 6일 연 2.081%를 기록, 지난달 30일부터 6 거래일간 사상 최저치를 연일 경신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달 15일 기준금리를 두달 만에 사상 최저치인 연 2.0%로 한 차례 더 내리 후에도 시장에서의 금리인하 기대감은 쉽게 꺾이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이 총재가 지난달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현 금리 수준에 대해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하지 않다”며 추가 인하 기대감을 잠재웠음에도 말이다.
여기에 일본은행이 지난 31일 발표한 추가 양적완화로 엔저가 가속화되자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1%대로 내릴 것이라는 시각은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최 부총리의 ‘50bp’ 발언으로 이런 쏠림현상은 갈무리가 됐다. 최 부총리는 지난 10일 국회 예산결산특위 정책질의에서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한은이 연달아 짧은 기간에 인하했기 때문에 한은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본다”며 기준금리의 추가인하 가능성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취임 후 금리인하 기대감에 줄곳 불을 지펴온 최 부총리가 브레이크를 걸자 시장은 바로 반응을 보였다.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지난 10일 2.0%대에서 2.1%대로 올라섰다. 급락세에 대한 조정으로 7일 0.009%포인트 소폭 올랐으며 10일부터서는 최 부총리의 발언으로 확실히 위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에 따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2일 현재 연 2.204%로 집계, 2.2%대를 회복했다.
박동진 삼성선물 연구원은 “최 부총리의 지난 10일 50bp 발언에 채권금리가 추종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며 “금통위를 코앞에 두고 시장이 이 총재가 아닌 최 부총리의 의중을 전격적으로 반영한 것은 시장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경제·재정 정책의 수장인 최 부총리는 지난 7월 취임한 이후 통화정책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시장은 ‘척하면 척’ 등 그의 발언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리막길을 걷기도 했다. 실제로 금통위도 정부와의 정책 공조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당초 예상보다 빠른 8, 10월에 하향 조정을 단행했다.
한 금융 전문가는 “금리정책의 결정권자이자 책임자인 이 총재가 금리 흐름의 주도권을 쥐고 시장을 이끌어야 하는데 여전히 시장은 최 부총리의 발언에 더 힘을 싣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중립성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물론 구두개입 등 이 총재가 펼치는 다양한 통화정책의 효과도 반감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