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이 정상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탈리아 과학자 갈릴레오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한 마디가 정상으로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가.
기존 관행을 깨기는 쉽지 않다. 관행을 변화하고 싶을 때 전제돼야 할 조건 중 하나가 시간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듯 한낱 개인의 버릇 하나도 쉽게 버리기 힘들다. 당연히 한 업계의 불문율로 자리 잡은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대표가 시도하고 있는 ‘관행에 대한 도전’ 역시 시간이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주 대표는 한화투자증권의 각종 제도와 정책을 뜯어고치면서 투자 문화의 틀을 새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주 대표의 시도는 단순히 한화투자증권만의 체질, 혹은 문화 개혁을 의미하지 않는다.
투자자 사이에서 새로운 투자 문화가 정착한다면 현재 증권업계의 관행적 투자 문화는 어떠한 방향이든 변화할 수밖에 없다. 주 대표의 시도는 기존 증권업계의 시선과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결국 주 대표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개혁을 시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욕속부달(欲速不達), 어떤 일을 급하게 하면 되레 이루지 못한다. 증권업계의 장수 최고경영자(CEO)로 알려진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는 9년째 연임에 성공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전략을 짜며 실적 개선으로 이끄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주 대표 역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주 대표가 시간을 확보하기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당장 주 대표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오너가 있는 그룹에서 전문 경영인의 임기는 ‘바람 앞의 촛불’이기 때문에 연임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30대 그룹 상장사 CEO의 평균 재임 기간을 조사한 결과 임기가 5년이 넘는 경우는 단 한 곳뿐이었다. 재임기간이 가장 긴 대우조선해양 CEO 평균 임기가 5.43년이었다. 한화그룹의 평균 임기는 2.78년으로 30개 그룹 중 14위를 차지했다.
증권업계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업계 중에서도 부침이 심하기로 유명한 증권업계의 CEO 평균 재임기간은 3년에 불과하다.
결국 칼자루는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이 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화그룹은 한화투자증권이 ‘독립경영’을 하고 있는 만큼 주 대표에 대한 관여를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연임에 대해서는 실적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단기적 성과와는 다소 무관하게 보이는 주 대표의 시도가 김승연 회장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주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주 대표가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실험은 결국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주 대표의 혁신을 얼마나 지지하느냐에 따라 계속될 것이냐, 중단될 것이냐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