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우리 시대의 보통사람들

입력 2016-03-04 10:39 수정 2016-03-0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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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이런저런 일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탐사한 트레킹 코스 강원도 바우길 위에서도 만나고, 이런저런 강연회와 이런저런 술자리에서도 만났다. 대략 마흔다섯부터 예순까지의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우리 시대 우리 어른들의 보편적인 모습일지 모르겠다. 들은 대로 몇 개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집 장만하고, 아이들 공부 가르치다 보면 사실 저축이라는 건 거의 생각할 수도 없어요. 한 달 한 달 생활비가 늘 빠듯합니다. 예전에 집을 사느라고 대출한 부채도 있고, 제가 만약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게 되거나 느닷없는 사고로 잘못된다면 그 순간 바로 우리 가정은 풍비박산되는 겁니다.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이 어느 날 그 집 가장의 신상에 변화가 있으면 가정도 바로 그날 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는 거지요.”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나 자신뿐 아니라 아직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미래가 지금으로선 내 직장의 안정성에 달려 있는 거지요. 열심히 안 살래야 열심히 안 살 수가 없습니다.”

“직장이 서울역 부근이다 보니 오가며 그곳에 있는 홈리스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중엔 정말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벌써 여러 해 비슷한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과 나의 차이를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그곳에 나온 사람들은 아닐 겁니다. 전엔 직장도 다니고 돈벌이도 했겠지요. 나하고 차이라면 나는 지금 나갈 직장이 있고, 그들은 없어서 그곳으로 내몰렸는지도 모르지요. 제가 지금 앉아 있는 자리와 그가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아주 다른 자리이긴 하지만 그게 천 리 밖의 자리가 아니라는 거지요.”

“직장의 옛 동료들이나 명퇴해 나간 다음 다른 일을 하다가 잘못된 선배들 얘기를 들으면 참 우울합니다. 우리가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지금 우리 나이의 직장 상사들을 보면 저 사람은 어떻게 노는 법도 모르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권고사직이든 명퇴든 회사를 나간 후 바로 다음 일거리를 찾는 겁니다. 그러고는 얼마 후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제 경우가 바로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는 기러기 아빠인데, 지금 캐나다에 가 있는 아내와 아이를 믿지만 여기저기에서 안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면 마음이 저절로 우울해집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그런 안 좋은 소식 하나 나오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들이 조심스럽게 먼저 전화를 걸어옵니다. 3년 되었는데,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죠. 이건 뭔가, 내 삶은 뭔가, 그러면 또 혼자 한잔 하고 그러죠.”

사실 이런 모든 걱정으로부터 벗어난 부유한 사람들은 왜 없으며 팔자 편한 사람들은 또 왜 많지 않겠는가. 그러나 올 한 해 내가 만난 보통사람들 대부분은 무엇엔가 피로 누적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몫으로 가족의 것이며, 스스로 건강하지 않으면 가족의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묻자 그냥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쨌거나 돈만 많으면 그 즉시 지금 가슴에 안고 있는 모든 근심과 걱정, 불안을 떨쳐내고 바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래서 그게 또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것 같아 쓸쓸해 보였다. 다가오는 봄은 좀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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