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타임 노동자 4만 4천여명의 수당과 임금 84억원을 지급하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이랜드파크는 이랜드그룹의 계열사다. 이랜드 그룹은 기독교 정신을 유난히 강조하고, 이에 따라 사회공헌을 실천하고 있다. 사회공헌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는 기업에서 벌어지는 사회책임의 방조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소비자와 시민은 사회공헌이라는 맷값을 받고 사회책임의 방조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기업의 사회공헌과 같은 것으로 치부하는 기업이 여전히 많다. 사회공헌은 기업의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는 활동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훨씬 광범위하게, 그리고 본질적으로 경영에 연관된다. 기업 활동과 경영상의 결정 전반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나쁜 영향은 줄이고 좋은 영향은 키우기 위한 노력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개념 상의 혼동이 불가능한 수준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대체될 수도 없고 대체되어서도 안된다. 예를 들면 옥시 레킷벤키저가 한국 사회에 수십 억원을 기부한다고 해서 그들의 가습제 살균기가 보여준 사회적 책임의 방기가 용서받을 수는 없다.
지금 한국 사회의 시계를 제로 상태로 만들고 있는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은 권력과 기업이 함께 국가를 폭행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관련된 이들은 하나 같이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고 항변하지만, 이 사태를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테러를 당한 것 같다. 국가의 공적 시스템과 시민사회, 그리고 언론과 전문가가 해체하려고 노력했던 정경유착의 고리를 다시 형성하려고 하는 불순한 시도에 사회공헌이라는 맷값을 들이댄 것이다. 한국사회의 공적 시스템이 푼돈 몇 십 억원에 팔려나갈 뻔했던 이 아찔한 시도는 결국 시민의 힘으로 무산됐다.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 사태의 와중에 이목을 끄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태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재벌총수들이 청문회에 출석했던 지난 6일, 현대차 울산공장의 보안운영팀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국회 청문회장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직원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국회청문회에 출석하는 정몽구 회장의 심기경호 논란을 일으켰다. 황당한 일이다. 다른 장소도 아닌 국회에서, 그것도 청문회장 앞에서 국민이 재벌 경호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강한 의혹이 제기됨에도 현대차는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도, 국회도, 시민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바람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망언으로 공분을 산 국회의원과 닮은 꼴의 대응이기도 하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에 이른 현재의 정국을 주도한 것은 시민이다. 기업 경영의 책임자라면 이 부분에 대해 숙고가 필요하다. 현재의 소비자와 시민은 기업이 경험해본 과거의 소비자와 시민이 아니다. 소비 행위 속에 들어있는 소비자의 권리를 꼼꼼히 챙기고, 기업의 경영이 시민과 맺는 관련성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새로운 시민이다. 이 시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 두 사람이 제기하는 이슈가 이 연결망을 통해 아젠다로 발전하기도 한다. 시민들이 모든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관심사가 집중되는 이슈는 폭발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시민의 변화는 곧 세상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구태의연하게 대처하는 기업은 앞으로의 시간을 장담할 수 없다.
현재의 사회적책임 경영의 수준은 보고를 위한 구색 맞추기 수준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변화해야 한다. 재벌총수들이 청문회에 참석한 6일과 국회의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9일 사이인 지난 8일, 국회에서는 CSR국가전략 수립을 제안하는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입법 차원의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지는 국제기구, 투자자, 소비자, 시민사회단체에서 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기업의 소중한 사회공헌 활동이 맷값으로 여겨지지 않는 세상이 오길 기대한다.
고대권 코스리 미래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