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도원(新齊都媛)은 백제의 왕녀이다. 이 이름은 우리나라 고대 기록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일본 문헌자료인 ‘일본서기’에 백제의 왕녀로 등장한다. ‘일본서기’에는 신제도원이 백제 직지왕의 누이라고 기록돼 있다. 직지왕은 백제 18대 전지왕을 말하는 것으로, 전지왕과 남매임을 알 수 있다. 전지왕 외에도 남자 형제로 전지왕대 내신좌평으로 활동했던 여신이 있다. 전지왕은 아신왕의 맏아들이라고 했으므로 신제도원의 아버지는 백제 16대 아신왕임을 알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백제의 불교 유입으로 유명한 15대 침류왕이 할아버지이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신제도원이 ‘일본서기’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백제 왕녀로서 왜로 건너갔다는 점 때문이었다. ‘일본서기’에는 응신천왕 39년에 신제도원이 7명의 여성을 거느리고 왜로 왔다고 하였다. 신제도원이 무슨 일로 왜로 갔으며,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런데 당시 백제는 왜와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하였다. 신제도원과 남매 사이인 전지왕도 태자 시절에 왜에 가 있다가 아버지 아신왕의 사망으로 귀국해 왕이 됐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백제에서 왜로 갔다. 그중에는 생활 속의 기술 문화를 전수하기 위해 간 사람도 많았다.
왜는 백제로부터 다양한 선진 문물을 전수받았는데, 그중에는 방직기술도 있었다. 당시 왜에서는 직조기술을 얻고자 하여, 중국과 백제로부터 직조 기술자들을 데리고 왔다. 왜에서 아지사주(阿知使主)·도가사주(都加使主) 등을 오국(吳國)에 보내어 베를 짜는 공녀(貢女)를 구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신제도원이 일본으로 가기 전인 응신천왕 14년에는 진모진(眞毛津)이라는 여성이 백제에서 왜로 건너갔다. 옷 만드는 기술을 가진 이 여인은, 뒷날 일본에서 구메노키누누이(來目衣縫)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백제는 독창적이면서 우수한 방직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백제의 수도가 있었던 부여 능산리 절터 서쪽 돌다리 백제 유적층에서는 6세기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면직물이 출토되었다. 목화에서 실을 뽑아 독특한 방법으로 직조한 것으로 강한 꼬임이 있었다. 이는 중국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는 기술로, 백제가 독창적인 방직 기술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황상 백제의 왕녀인 신제도원 역시 백제의 방직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왜로 갔을 가능성이 높다. 신제도원이 거느린 여성 7명도 섬유, 직조 기술자였을 것이다. 왜로 건너간 뒤 신제도원이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백제의 우수한 직조기술은 왜에 전수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