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가 20일(현지시간)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선 과정에서 막말과 성 추문 등 숱한 논란에 휩싸였지만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미국 유권자들은 정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힐러리 클린턴 대신 “미국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를 선택했다.
이날 대통령 취임식에서 트럼프는 18분간의 연설을 통해 미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외교, 경제 쇄신을 표명했다. 아울러 고용 창출과 이민 제한을 강조했다. 대선전에서 깊어진 미국 사회의 분열을 회복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화합과 결속을 추구,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자”고 호소했다.
트럼프의 임기는 2021년 1월까지 4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자유주의 노선을 전환해 국제 질서와 원칙보다 ‘거래’를 중시할 방침이어서 미국내외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美 최초 재벌 출신 대통령=트럼프는 12조 원대 자산가로 공직·군 경력이 전혀 없다. 그의 나이 올해로 만 70세로 미국 최고령 대통령이 되는 기록도 세웠다. 1946년 독일계 이민자 2세의 넷째로 태어난 트럼프는 부친으로부터 1971년 부동산업체 ‘엘리자베스 트럼프 & 선’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 전 세계에 호텔과 골프장 그리고 카지노 등을 운영하는 지금의 ‘트럼프그룹’을 일궜다. 그가 대권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비록 중도에 접었지만 2000년 개혁당 대선 경선에 출마하는 등 한 차례 대권에 도전한 바 있다. 그러다가 2015년 6월 다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소속된 공화당에서조차 그의 출마를 반기지 않았다.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데다 리얼리티 TV쇼 ‘어프렌티스’ 진행자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탓이다. 여기에 각종 막말을 서슴지 않아 대통령 후보로서 품위가 없다는 지적도 빗발쳤다.
◇여론조사 무색케 한 반전의 드라마=정치 엘리트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무난히 이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트럼프와 클린턴은 막판까지 초접전을 펼쳤다. 본선은 트럼프에게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9월부터 시작된 클린턴과의 세 차례의 대선 후보 토론에서 모두 패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대선을 한 달 앞둔 10월 초에는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가 잇달아 납세회피 의혹과 음담패설 녹음 파일을 공개해 궁지에 몰렸다. 그러다가 대선을 코앞에 둔 10월 말, 연방수사국(FBI)이 클린턴의 이메일 사건을 재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판세는 다시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대선 당일인 지난해 11월 8일 오전까지만 해도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선 당일 개표 초반부터 트럼프의 돌풍은 거셌고 결국 트럼프는 304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면서 클린턴(227명)을 제쳤다. 일각에서는 ‘미국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고 표현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빗나간 여론조사 예측과 트럼프 선전 배경에 대해 ‘샤이 트럼프(shy Trump)’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트럼프 공개 지지를 꺼렸던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 파악되지 않았으나, 이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면서 트럼프의 승리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퍼스트”= 각종 막말로 논란은 끊임이 없었지만 트럼프의 주장은 일관성이 있었다. 그는 경선 초반부터 불법이민, 미국인 일자리 감소, 정부 부채, 범죄, 이민 정책 등에 초점을 맞춰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미국인들의 내면에 있던 기성 정치에 대한 분노를 자극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변방으로 밀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백인 서민층의 표심을 공략하고자 멕시코 국경지대에 불법 이민자 차단을 위한 거대한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또 점점 커지는 테러 위협 속에 모든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하겠다는 극단적 공약으로 강경 극우세력의 지지를 모았다. 하지만 트럼프 정책 공약의 이행과 효과에 대한 미국 안팎의 의구심은 여전히 크다. 급진적인 그의 공약들이 현실적으로 이행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다 현실화된다 해도 역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