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32. 정신부주(貞信府主)

입력 2017-06-14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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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공주에 밀려 제2비가 된 고려 왕비

▲전등사.
▲전등사.

정신부주(貞信府主·?~1319) 왕씨는 고려 충렬왕의 왕비이다. 충렬왕이 태자 시절인 1260년(원종 1) 태자비로 간택되었다. 아버지는 종친인 시안군(始安君) 왕인(王絪)이다. 1274년(원종 15) 태자비였던 정신부주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전쟁 종식을 위하여 몽골에 들어간 남편이 원세조의 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와 혼인을 한 것이다. 혼인한 지 14년 만에 두 번째 왕비를 얻은 셈인데, 고려 왕실은 애초에 다처제였으니 예전 같으면 별 문제가 안 될 일이었다.

문제는 원과 고려가 대등하지 않은 관계였다는 점이다. 이로써 원비(元妃)였던 그녀는 제2비로 밀려나게 되었으며, 겨우 16세에 불과한 원 공주가 제1비가 되었다. 이 해에 시아버지 원종이 죽고, 남편은 공주와 함께 귀국하여 충렬왕으로 즉위했다. 그녀는 정화궁주(貞和宮主)로 책봉되었다.

제국대장공주가 입국한 순간부터 정신부주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1275년 제국대장공주가 아들 충선왕을 낳았고, 정화궁주는 공주의 순산을 축하하는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그런데 공주가 앉을 자리[평상(平床)]가 말썽이었다. 공주는 자신의 자리가 정화궁주의 자리보다 높을 것을 요구했다. 또 정화궁주가 술을 따를 때 왕이 공주를 돌아보니, “왜 나를 흘겨보느냐, 궁주가 내 앞에 꿇어앉아서 그런 것이냐”며 화를 냈다. 연회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공주를 공주의 유모가 간신히 달래 앉혔다.

1276년에도 사건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다루가치(고려의 내정을 간섭하기 위해 원에서 설치한 관리)에게 투서를 하였는데, 정화궁주가 왕의 총애를 잃자 무당을 시켜 제국대장공주를 저주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공주는 당장 정화궁주를 잡아 가두었는데, 관리 유경(柳璥)이 극력 변호하여 석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화궁주는 이후 수십 년간 왕을 가까이할 수 없었다. 1297년 제국대장공주가 죽고 충선왕이 부왕의 선위를 받아 즉위한 뒤에야 충렬왕과 동거할 수 있었다.

정화궁주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강화의 전등사(傳燈寺·사진)는 고구려 때 아도(阿道) 화상이 창건한 절로 처음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였다. 그러나 정화궁주가 등잔을 시주함으로써 이름을 전등사로 고쳤다. 또 정화궁주가 중 인기(印奇)에게 부탁하여 송나라에 들어가 대장경(大藏經)을 인쇄해 와서 전등사에 보관하게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전등사는 정화궁주의 원찰(願刹)이기도 하였다.

정화궁주는 1319년(충숙왕 6)에 세상을 떠났다. 궁주는 강양공(江陽公) 왕자(王滋)와 두 딸을 낳았는데, 강양공 역시 충렬왕의 맏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원 공주 소생이 아니라 왕위를 이을 수 없었다. 정화궁주는 원과 고려 간의 퉁혼(通婚)으로 고려왕비가 피해를 본 첫 사례이며, 이후 이 같은 일은 원(元) 간섭기 내내 계속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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