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뭐 입지?”
풍요 속 빈곤이라고 했던가. 누구나 한 번쯤 옷으로 가득 찬 옷장 앞에서 입고 나갈 만한 옷이 없다는 고민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며 지난 4월 인공지능(AI) 스피커 ‘에코룩’을 선보였다. 원통형의 에코룩 스피커에 장착된 카메라 앞에 서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에코룩의 AI 알렉사가 이용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최적의 스타일을 조언해 준다.
에코룩의 조언대로 옷을 입는다면 ‘패알못(패션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소위 옷 잘입는‘패션 피플’로 거듭날 수 있을까. ‘AI 패션 감별사’ 에코룩과 ‘인간’ 패션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패션 조언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흥미로운 비교 실험을 해 소개했다.
WSJ는 에코룩에 맞설 인간 ‘패션폴리스’로 패션잡지 ‘인스타일’의 헐 루벤스타인 편집장과 테리 에이긴스 WSJ 패션 칼럼니스트, 유명 스타일리스트 폴 쥴크와 솔란지 카브킨을 선정했다. 남자와 여자 모델이 20여 벌의 옷을 갈아입고, 구두로 “알렉사, 사진 찍어”라고 명령해 사진을 촬영했다. 패션 전문가에게도 이 사진을 보여줬다.
실험 결과, 여성 패션의 경우 패턴과 길이가 다른 원피스를 입었을 때 에코룩과 패션 전문가들은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에코룩과 패션 전문가 모두 패턴에 상관없이 길이가 짧은 원피스보다 적당히 긴 원피스에 대해 착용감 측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줬다. 반면 남성 패션의 경우 사이즈가 다른 스웨터를 입었을 때 에코룩과 패션 전문가의 의견이 달랐다. WSJ는 스타일의 여러 요소 중 어떤 것을 중시하는 지는 주관적 판단으로, 에코룩 역시 주관적 판단을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패션 전문가들은 색상과 착용감 중 착용감에 더 중시했다면 에코룩은 색상을 더 중시했다.
아마존은 에코룩의 패션 판단이 어떤 알고리즘에 의한 것인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옷의 착용감과 색상, 계절, 현재 패션 트렌드와 고객의 개성 등을 감안해 가장 잘 어울리는 패션 스타일을 제안한다고. 과거 구매 데이터는 패션 감별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진을 최대한 많이 찍어 데이터를 에코룩에 입력할 수록 나에게 더 맞는 패션 스타일을 추천받을 수 있다.
그러나 WSJ는 가끔 과감한 패션, 이전에 입어보지 않았던 스타일을 시도해보고픈 고객의 마음까지 알아채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패션 전문가들은 패션의 묘미는 기존의 트렌트를 깨고 파격적인 조합을 찾는 것에 있지만 에코룩은 이러한 ‘파격’을 피할 것을 조언한다는 것. 결국 에코룩의 조언대로만 옷을 입는다면 ‘진정한’ 패션 피플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