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대표들과 처음 얼굴을 맞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일성은 유통 갑질을 향한 ‘쓴소리’였다. 이미 발표한 대로 대규모유통업법 집행체계의 대대적 수술과 강도 높은 유통 갑질 조사를 향한 강경방침에는 일관된 입장을 내비쳤다. 공정위가 지난달 프랜차이즈 가맹 분야에 이어 두번째로 유통 분야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판매수수료 공개 확대 등 규제의 폭을 넓히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힌 만큼 업계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법 준수를 넘어 유통·납품업체가 스스로 협력·상생할 것을 당부했다. 납품업체의 자금사정·투자여력 약화로 인한 경쟁기반 잠식의 피해는 유통산업의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6일 대한상공회의소회관에서 체인스토어협회·백화점협회 등 유통업계 6개 사업자단체 대표와 마주한 김상조 위원장 발언의 핵심은 ‘유통분야 개혁’이다. 새로운 룰이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동참해달라는 당부로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김 위원장은 ‘판매장려금 규제’를 예로 들면서 “판매장려금 규제 때문에 대형유통업체의 경쟁력이 약화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통업체들은 비정상적인 장려금 징수를 포기하고 새로운 거래의 룰에 적응, 더 강한 체력을 갖게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유통산업의 경쟁력은 큰 틀에서 봐야 한다”며 “단기적인 이익확보를 위해 협상력이 약한 납품업체로부터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고 비용과 위험을 최대한 떠넘기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납품업체의 자금사정·투자여력 약화로 이들의 경쟁기반이 잠식될 경우 그 피해는 유통업체가 짚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대형유통업체의 부당한 이익 수취행위나 각종 비용·위험 전가행위를 법으로 규제한 것은 ‘최소한의 장치’라는 게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유통업계는 개별 회사나 업태의 이해관계만 보지 말고 산업 전체의 시각에서 납품업체와 스스로 협력·상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며 “유통업계 스스로 각 업태별 특성에 맞는 상생모델을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유통업계 일부에서는 정부의 규제일변도 정책이 투자 위축과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하면서도 정부 정책에 맞설 수 없기 때문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비심리 위축, 중국의 사드 보복, 최저임금 등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취하는 조치들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대한 이행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기조에 따라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업계 대표들은 ‘상생협력’과 ’불공정관행 개선’ 등의 맥락에 공감하면서도 정책 추진과정에서 유통업태별 거래행태 및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줄 것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