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etoday.co.kr/pto_db/2018/06/20180629101850_1225966_200_275.jpg)
또 자료를 찾아보니 마크 트웨인(1835~1910)은 10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노벨상을 받지 못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톨스토이(1828~1910)도 받지 못했다.
어찌 됐든 노벨 문학상은 다른 노벨상보다 더 관심이 높다. 문학이 물리학이나 경제학보다 접하기 쉬운 점도 있지만 글을 쓰는 사람, ‘작가’에 대한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마크 트웨인이 최초의 만년필 광고 모델이었다거나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가 만년필보다 연필과 타자기를 더 애용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이다.
이런 사람들의 관심이 돈이 된다는 것을 만년필 회사들이 모를 리 없다. 더군다나 작가와 만년필의 관계는 보통 관계가 아니지 않은가. 유명한 작가를 내세워 마케팅에 활용한 것은 1890년대 워터맨사(社)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폴 이 워트(Paul E. Wirt)사(社)가 처음이었다. 만년필과 작가, 뭔가 잡힐 것 같은 이 조합은 폴 이 워트사가 힘이 빠질 때 즈음인 1900년대 초 콘클린(Conklin)사(社)가 이어 받았는데 역시 모델은 마크 트웨인이었다.
하지만 이 조합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만년필 회사들이 가장 치열한 대결을 했던 1920~1940년의 황금기에는 새로운 성능을 소개하기 바빠 작가와의 조합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파커51과 볼펜이 등장한 1940년대, 볼펜이 성장한 1950년대, 만년필의 암흑기라 할 수 있는 1960~1970년대, 부활의 시기인 1980년대까지 작가와 만년필의 조합은 잠잠하였다.
작가와 만년필의 조합이 다시 등장한 것은 만년필 부활의 연장선인 1990년대 초이다. 1990년 파커사(社)는 명탐정 셜록 홈즈로 유명한 코난 도일(1859~1930)이 파커 듀오폴드의 애용자였다는 것을 광고에 넣었다.
![▲1992년 몽블랑의 작가 시리즈 헤밍웨이 한정판.](https://img.etoday.co.kr/pto_db/2018/06/20180629101849_1225965_628_852.jpg)
반면 1992년 가을 몽블랑은 드디어 사람들이 원하는 조합을 찾아낸다. 누가 자기네 만년필을 썼다는 그런 구식(舊式)이 아니라 만년필 자체에 작가의 생명을 불어넣어 작가 시리즈라 이름 짓고 한정판(限定版)을 내놓은 것이다.
첫 번째로 내놓은 게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였다. 만년필 수집가들 사이에 성배(聖杯: 수집가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것)로 불리는 1930년대 139를 베이스로 하여 몸통을 오렌지색으로 바꾸고, 1930년대 왕성한 활동을 했던 체험문학의 위대한 작가 헤밍웨이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 만년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고 싶어지는 조합인 것이다. 이 한정판 시리즈 성공으로 만년필 세계의 주도권은 파커에서 몽블랑으로 바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