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이랜드 박성수 신화

입력 2008-05-15 16:40 수정 2008-05-1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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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확장 무리수...홈에버 매각 카드

박성수 회장이 지난 1980년 이화여대 앞 2평의 옷가게로부터 시작해 공격적인 외형확장을 통해 승승장구해 오던 이랜드 그룹이 기로에 서 있다.

2006년 한국까르푸를 인수하며 지난해 공기업 제외 재계 순위 26위 그룹으로 올라선 이랜드 그룹은 불과 20개월만인 지난 14일 홈에버(옛 까르푸)를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에 2조3000억원에 전격 팔게 됐다. 홈에버 직원 5500명을 승계하고 부채를 100% 떠안는다는 조건과 함께.

이를두고 관련업계에서는 그간 이랜드가 무리수를 두고 외형확장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재무상태 악화 및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면서 불과 인수 20개월만에 홈에버 매각 카드를 던질 수 밖에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 회장과 이랜드의 성장과정, 현 상황에 대해 점검해 본다.

◆ 위기 때마다 기사회생

박성수 회장과 이랜드의 첫번째 위기는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찾아왔다. 당시 이랜드 그룹은 부도위기까지 내몰리며 채권자들로부터 빚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28개에 달하던 계열사를 8개로 정리했고 직원도 50%나 감원하는 등 초강수 구조조정 카드를 내밀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랜드가 당시 회생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부도 직전 외국 투자가로부터 5000만 달러(당시 환율 달러당 1800원 이상)란 거액을 차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랜드의 두 번째 위기는 2000년에 발생했다. 2000∼2001년까지 무려 265일간이나 벌어진 이랜드 노조의 장기파업투쟁과 관련 노동부와 법원이 부당노동행위로 박 회장에 대해 소환과 영장을 발부했으나 그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는 이 위기를 3년 간 미국에서 외유 생활을 통해 모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한 박 회장과 이랜드는 전열을 가다듬은 2003년부터 공격적인 외형확장에 전력을 쏟았다. 2003년 이랜드는 그해 8월 패션업체 ㈜데코(인수가 106억원)를 인수하고 그 해 12월 ㈜뉴코아(인수가 6253억원)와 M&A 본계약을 체결했다. 그해에는 제이빔, 앙떼떼 등 모두 6개의 브랜드도 인수했다.

2005년 7월에는 ㈜해태유통, 11월에는 ㈜태창의 내의사업 부문을 인수했다.2006년에는 ㈜삼립개발 하일라콘도와 의류업체 ㈜네티션닷컴을 인수하는가 하면 까르푸도 인수했다. 국제상사와 세이브존을 상대로 경영권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3년 남짓한 기간 동안 박 회장과 이랜드가 브랜드를 포함 인수한 기업만 20개에 달한다.

이랜드는 까르푸 인수 이후 제1단계인 패션기업에서 제2단계 유통그룹으로 도약을 마치고 앞으로 제3단계인 레저그룹까지 아우르는 변신을 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그룹 전체 연 매출 10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 무리한 외부 자금조달이 가져온 문제

그간 이랜드는 이러한 행보들에 대해 "직접 회사를 설립하거나 사업부를 런칭해 안정화시키려면 막대한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에 일정 궤도에 올라있고 매물로 나온 회사를 인수하는 게 안전성과 함께 성장도 함께 이뤄나갈 수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입장으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문제는 이랜드가 일련의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자금 조달방식에서 내부자금 보다는 외부자금을 통해 무리수를 두고 외형확장을 해왔다는 점이다.

까르푸 인수를 예로 살펴본다. 이랜드가 까르푸 인수자금 1조7500억원과 관련 이랜드는 자기 자본으로 3000억원만을 조달하고 8000억원은 은행권을 통해 그외 금액도 제2융권과 투자자들을 통해서 꾸려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즉 매해 막대한 이자를 지불하는 빚더미 가운데 인수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하겠다는 게 이랜드의 방침인 셈이었다. 이달 이랜드가 유럽계 사모펀드 퍼미라로부터 40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발표한 것도 이러한 부담들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행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차입경영을 통해 지난해말 기준으로 이랜드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부채비율(연간 이자비용)은 이랜드리테일은 651.3%(1016억원), 이랜드월드의 경우 211.0%(487억원), 뉴코아는 168.8%(216억원), 이랜드는 483.0%(156억원)으로 치솟았다.

이랜드가 인수 첫해인 지난해 3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던 홈에버는 지난해 20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기록했다. 홈에버를 운영하는 이랜드리테일은 지난해 1조5767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649억원의 영업손실, 193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홈에버는 지난해 비정규직 문제로 노사 갈등이 심화되면서 전 국민적인 관심사로까지 번지는 등 사회문제화돼 이랜드그룹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지난해 초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놓고 노사가 마찰을 빚다가 대량해고, 6월말 노조의 매장 점거, 7월 공권력 투입으로 인한 강제 해산, 이후 이어지는 노조의 집회와 노사간 법적 소송 다툼 등 홈에버 문제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 이랜드는 이제 생존을 위한 차원에서 홈에버를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에 2조3000억원에 팔아야하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관련업계 전언이다.

신용평가기관과 증권가에서는 홈에버를 재매각하면서 그룹의 외형은 축소되겠지만 재무적인 측면에서는 이랜드 그룹과 이랜드리테일에게 장기적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으로 이랜드는 당분간 패션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짤 것으로 관련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위기 때마다 기사회생 이후 무리한 공격적인 확장 행보를 펼쳐 온 박성수 회장과 이랜드의 향후 발걸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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