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부품 업체 니치콘이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전자기기의 핵심 재료인 ‘콘덴서’의 가격 담합을 주도한 행위를 법원이 인정했다. 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니치콘에 부과한 과징금 21억 원과 시정명령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3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니치콘이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니치콘이 불복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이달 4일 확정됐다.
공정위 조사 결과 니치콘 등 일본계 업체 9곳은 1990년대 후반부터 사장회ㆍECC회ㆍATC회 등 다자회의를 통해 알루미늄 콘덴서의 가격 담합을 논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원자재 가격 인상이나 환율 변동 등을 이유로 가격을 올릴 때 세계 시장에서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들은 ‘Cost-Up’의 줄임말인 이른바 CUP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원재료 비용 인상 및 엔고 현상(엔화 강세)에 따른 가격 인상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니치콘은 삼성전자 TV 사업부와 휴대폰 사업부로부터 콘덴서 견적 의뢰를 받자 삼성에 납품하는 CUP 회원사에 견적 가격을 받는 등 정보를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니치콘 등 일본계 업체들이 다자회의, 양자 접촉을 통해 제품 가격을 인상ㆍ유지한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알루미늄 콘덴서에 대해 2006~2009년, 탄탈 콘덴서는 2007~2009년을 니치콘의 담합 행위 기간으로 보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약 21억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니치콘을 포함해 담합 행위를 한 일본 기업들에 총 360억9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재판부는 “1990년대부터 형성된 ‘서로 가격 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기본 합의를 바탕으로 시기 및 상황에 따라 최저가격 설정, 가격 유지, 인상 등 세부 합의로 구체화됐다”며 “이 사건 공동행위는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장기간에 걸쳐 경쟁의 핵심 요소인 가격을 공동으로 결정한 행위는 효율성 증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경쟁을 제한하는 부작용이 명백하다”며 “니치콘은 CUP회를 통해 콘덴서의 가격 담합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가담 정도가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가격경쟁 제한을 통해 설정된 가격에 따라 제품을 구매한 국내 수요 업체들은 적지 않은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며 “이 사건 공동행위는 기술 혁신의 경제적 유인을 감소시켜 기술 발전 경쟁도 저하해 위반 행위의 정도가 매우 크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