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의 새 안주인이 될 질 바이든 여사의 ‘슈퍼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본업인 교수직에서도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파워풀한 내조’로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바이든 여사는 1975년 델라웨어대학에서 영어학을 전공한 뒤로 줄곧 교육자로서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남편인 조 바이든 당선인이 무려 47년의 화려한 정치 이력을 쌓아오는 와중에도 독립적으로 교편을 놓지 않았다. 박사학위 논문 발표 때 자신의 결혼 전 성을 앞세워 ‘제이컵스 바이든’이란 이름을 쓴 것은 그의 강한 독립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이든 여사는 남편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교육자의 삶을 살길 원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남편의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당시에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직접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바이든 여사의 이러한 의지는 이미 예고된 일이다. 이미 바이든 당선인의 부통령 시절부터 그는 ‘유급 일자리를 가진 미국의 최초 세컨드 레이디’란 타이틀을 따냈다.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활동할 당시 해외 순방을 위해 전용기에 오른 상황에서도 학생들의 답안지를 채점했다는 일화는 질 바이든 여사의 교육을 향한 열정과 애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결국 이러한 끈기와 열정은 그녀를 이제 곧 ‘유급 일자리를 가진 미국의 최초 퍼스트 레이디’로 만들어 줄 예정이다.
물론 질 바이든 여사가 독립적이라고 해서 바이든 후보의 내조에 소홀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서도, 정치인의 아내로서도 완벽을 추구했다. 미국 언론들은 그녀를 ‘바이든의 최종병기’라고 칭하면서 그의 ‘막강한 내조’에 주목했다.
질 바이든 여사는 최근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직장을 휴직했다. 남편인 바이든 당선인의 대통령 선거 운동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이 남편의 내조에 충실하지 못해 선거 결과가 좋지 않다면 후회가 클 것 같다면서, 1981년 딸 애슐리 출산 이후 처음으로 직장에 휴직계를 냈다.
이후 질 바이든 여사는 부통령 러닝메이트 후보에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낙점한 것과 같은 중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행 유세, 온라인 연설, 모금행사는 물론이고,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바이든 캠프 안에서 교육 관련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는 등 바이든 당선인의 선거 과정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했다.
백악관 입성 이후 질 바이든 여사는 미국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새로운 역할 모델이 되는 한편, 전문 분야인 교육 관련 문제에서도 남편인 바이든 당선인의 든든한 조언자가 될 전망이다. WP는 바이든 여사는 현재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보다 훨씬 더 대중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