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의 일, 삶, 배움]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입력 2021-09-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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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별 생각 없이 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 제공하는 프랑스 드라마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를 보면서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하고 찾아보니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들어 봤을 축구의 레전드, 프랑스 출신 에리크 캉토나(Eric Cantona)였다. 축구 선주 중 골 좀 넣어 봤다는 선수는 다 한 번씩 따라 한다는 ‘시건방 세레머니’의 원조이자 축구계의 악동이었다. 그런 그를 축구계가 아닌 드라마에서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기하던지.

이러한 신기함은 금세 잊어버리고 6화짜리 드라마를 정주행하였다. 드라마의 내용 때문이었다. 이 드라마는 프랑스에서 추리 작가로 명망이 높은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itre)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내용은 중년 나이에 몇 년간 실업자로 있던 주인공(캉토나)이 대기업 인사부장 입사 조건으로 그 회사 중역을 테스트하기 위해 이들을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인다. 그러나 중간에 이미 입사자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자 여기에 분노하여 실제 인질범이 되어 붙잡힌다. 변호사인 그의 딸이 아버지를 위해 변호하면서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검사와 변호사가 ‘사회계약’이란 개념으로 다툰다는 것이다. 검사가 먼저 해고된 노동자가 폭력이나 봉쇄 같은 것을 할 권리는 있지만 인질극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행동이 불평등이나 사회적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계약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자신을 합리화하는 알리바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변호사인 딸은 아버지를 비롯한 국민은 국가가 하라는 대로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공부하고, 노동을 하며, 자식을 낳고, 빚내서 아파트를 구입하라는 명령을 잘 준수하였는데 사회계약 준수에 따른 혜택을 받을 시점에서 사회가 마음을 바꿈으로써 연금은 줄고, 잡일이나 하게 하고, 노년은 비참해지고, 불안감만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연 사회계약을 깬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판사와 배심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전 세계는 때때로 사회계약을 변경해 왔다. 20세기에 들어와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뉴딜이다. 우리는 뉴딜을 경제부흥 정책 정도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대공황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사회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불평등한 소득구조를 바꾸기 위해 90%에 육박한 소득세율 상승,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각종 노동규제, 기업의 욕망 독주를 저지하고 노동자와 소비자 권익을 위한 참여제도 활성화 등이 대표적이다.

뉴딜 당시의 사회계약은 자본이득 감소와 국가재정 악화 등으로 인해 점점 변하기 시작하여 1980년 초를 분기점으로 국가의 사회계약 이행률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소위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으며 이러한 결과가 축적되면서 드라마와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배경이라 하겠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납세, 국방, 교육, 근로를 4대 의무라 하여 국민이면 의무적으로 수행해야만 한다. 이는 국민이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국가와 계약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며, 이것을 어길 때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의 의무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만 한다. 특히 교육과 근로에 대한 적정한 보상과 혜택은 사회계약 지속을 위해 필수적 요건이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워싱턴 컨센서스가 새로운 사회계약 형태의 모범으로 인식되면서 국가보다 개인의 책임을 중요시하는 사회계약으로 변화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가 국민의 의무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해 주지 않으면서 교육수익률 저하, 정규-비정규직 갈등, 출산율 저하, 부동산 폭등, 소득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갈등을 매일매일 목격하고 있다. 국민의 어려움이 드라마의 지적처럼 국가가 사회계약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볼 때이다. 기존의 사회계약 이행이 어렵다면 국가는 앞으로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미 전 세계는 새로운 사회계약서 작성을 위한 논의 테이블 좌석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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