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서두른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여론 수렴 과정이 부족했다는 비판에도 귀를 열 만하다. 그렇다고 대통령실 이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거나 용산 말고 다른 곳으로 가라는 주장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더도 말고 딱 이니에게 그랬던 것만큼만 관용을 베풀어 보자. 이니가 취임 후 맨 처음 했던 일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와 일자리 상황판 설치였다.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를 청와대 민정수석에 앉힌 것도 이때였다. 취임 이틀째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도록 했다. 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조치도 발표했다.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하나같이 말리고 싶은 일들이고, 실제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주권자들은 하고 싶다면 일단 해보라고 밀어주는 통 큰 배포를 보였다.
아직 이니가 대통령이니 여리가 하고 싶은 일은 취임하면 하라고 말하는 것도 공평하지 못하다. 이니는 대선이 끝난 뒤 인수위 없이 곧바로 취임한 대통령이다. 이니에게 없었던 ‘당선인다움’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로 보이는 이유다. 무엇보다 주권자들이 5년 만에 정권을 바꾸기로 결정한 것은 이니에게 지금의 국정운영 방식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쪽은 여리가 아니라 오히려 이니 쪽일지도 모른다.
숫자를 말하고픈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0.7% 차로 당선된 사람과 임기 말 40% 지지율의 대통령을 비교하지 말라 할 수 있겠다. 이니도 여리 당선 후 첫 메시지로 “역대 가장 적은 표 차로 당선됐다”며 역대 최다인 557만 표 차로 승리했던 자신과는 체급이 다름을 은근히 부각했다. 그런데 6을 뒤집으면 9가 되듯 숫자는 보기 나름이다. 여리가 0.7% 차로 얻은 표는 1640만여 표로 역대 최대다. 이니의 1342만여 표보다는 300만 표가량 많다. 이니의 19대 대선 득표율은 41.08%로 여리의 48.56%에 한참 모자란다.
임기 말 40% 지지율도 마냥 자랑인지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포용해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이니는 41%로 취임해 40%로 퇴임하게 된다. 숫자로만 말하자면 단 한 사람도 포용하지 않고 물러난다는 뜻이 된다. 역대 대통령의 지지율과 비교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 중 취임 5년 만에 정권 교체론에 휩싸여 국정을 내려놓게 된 대통령이 없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한때 하고 싶은 거 다하라고 밀어주던 이니가 보통 이니였던가. 무려 ‘우리’ 이니였던 시절이 있었다. 구중궁궐 본관에서 나와 여민관에 집무실을 마련하고, 수석들과 커피를 들고 청와대를 산책하는 풍경, 직접 식판에 밥을 떠 청와대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밥을 먹는 모습은 잠시나마 가슴이 웅장해지기에 충분했다. 여리도 청와대에서 나오겠다고 하고, 경복궁 주변을 산책하고, 담소를 나누며 밥을 먹고 있다. 이니에게 그랬듯 또 한번 웅장해져야 공평하다.
이니의 취임 당시 지지율은 70%였다. 40%로 당선된 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기다. 이니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반대했던 60%의 주권자 중 절반이 일단 뽑았으니 믿고 맡겼다는 의미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여리가 잘할 것이라는 비율은 50%에도 못 미친다. 공평해져 보자. 이니를 ‘우리 이니’로 인정했듯 여리도 ‘모두의 여리’로 받아들이는 게 순리다. 어느 대기업 회장이 ‘못 믿으면 쓰지 말고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고 했다. 못 미더웠을지언정 일단 머슴으로 썼으니 의심을 거두고 마당이라도 한번 쓸어보라 해야 하지 않겠나.
여리가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면 그러라고 해보자. 다른 이유 다 제쳐두고 “일단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개미지옥설은 이니조차 몸으로 증명한 사실이다. 가겠다는 곳이 하필 국방부여도 그러라고 해보자. 겨우 건물 옮기는 일로 안보 공백이 생긴다면 여객기로 펜타곤 건물 얻어맞았던 미국은 20년 전에 패망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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