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는 전지전능한 ‘선의의 사회계획가’가 있더라도 시장에 의해 자원이 배분되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하물며 현실 세계의 독재자는 설령 그가 선한 마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기에 시장보다 효율적인 결정을 하지 못한다.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시장이 의사결정의 주체이고, 계획경제 체제에서는 당의 리더가 의사결정의 주인공이다.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의 붕괴는 그들이 선전하는 유토피아가 실은 디스토피아였고, 인민을 위해 밤잠을 설친다는 그 위대한 리더들 역시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나오는 돼지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구소련은 미국과 지나친 군비경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통계에 기반한 허황된 계획으로 이미 내부적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절대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잘못된 정보가 판칠 수밖에 없다. 정보를 생성하는 쪽이 목숨을 부지하려면 독재자의 입맛에 맞는 정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대약진 기간의 중국이 그랬고, 현재의 북한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기대 이하의 전쟁 수행 능력을 보이는 원인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설계한 유토피아 세상은 모든 정보를 손에 쥔 ‘선량한’ 독재자가 존재할 수 없기에 비현실적인 제도가 돼 버렸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는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면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가장 우수한 제도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즉 디지털 레닌주의의 시작이다. 위조지폐 방지와 거스름돈의 불편함을 해소한다는 목적으로 전 국민이 간편 결제 시스템을 사용한다. 안전한 여행을 위해 철도와 고속버스를 이용하려면 신분증을 제출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길을 걸어가다가도 기꺼이 신분증을 보여줘야 한다. 음주운전, 불법주차, 노상방뇨를 막기 위해 모든 거리에는 폐쇄회로TV(CCTV)가 설치되어 있다. 경제와 과학이 극도로 발전한 시기에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진정한 공산주의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지만, 중국 정부는 그들이 강력한 통제시스템으로 조기 수습에 성공하였다고 자평한다. 칭링(淸零)이라고 부르는 제로코로나 정책은 그들 시스템의 자랑이다. 14억 인구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면서 감염경로를 추적하고, 확산하기 전에 강력한 봉쇄를 시행하였다. 칭링은 21세기 빅데이터 시대에서 시진핑 체제의 우월성을 국내외에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 수도인 상하이에서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하면서 그들의 자랑인 제로코로나 정책이 일대 위기를 맞았다. 확성기를 등에 멘 로봇개가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면서 경고 방송을 한다. 항의하는 시민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흰옷을 입은 관원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간다. 정부는 멀쩡한 마트를 문 닫게 하고 직접 식량을 배급하겠다고 했으나 현실은 완전히 엉망이다. 봉쇄 직전 한 식료품 가게에서는 채소 한 단을 서로 차지하려는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거기서 그 채소 한 단을 움켜쥔 이가 승자다. 그는 본능적으로 정부를 믿지 않았다.
시장과 정부의 관계에 있어서 정부가 팔을 걷어붙여야 할 때는 평상시가 아니라 혼란이 발생할 때이다. 모든 일에 정부가 개입하는 중국의 디지털 레닌주의는 평시에는 잘 작동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시스템은 확진자의 동선을 시간대별로 낱낱이 파악해 냈다. 그런데 정작 혼란이 발생하자 그들이 자랑하는 빅데이터와 AI는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260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상하이는 코로나가 아니라 정부 통제로 마비되었고,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돌이켜보면 위기의 순간 한국이나 미국의 대응은 중국보다 훨씬 침착했고 안정적이었다. 상하이 인구는 중국 전체 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들의 지도자에게 고작 2%의 고통은 승리를 위해 인내해야 할 과정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