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가운데 부당 이득 제공 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를 5년에서 15년으로 늘리는 법안이 발의된다. 최근 ‘벌떼입찰’로 인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은 부과 받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검찰 고발을 피한 호반건설 사건이 그 계기가 됐다. 공소시효 15년은 ‘50억 원 이상의 횡령 범죄’에 준하는 엄벌 수준이다.
2일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한 공동발의 요청을 진행 중이다. 이 개정안은 ‘부당한 이익 제공’ 행위에 대해 현행 5년인 공소시효를 15년으로 연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공정거래법에 제129조의 제2항(공소시효에 관한 특례)이 신설된다. ‘제124조 제1항 제10호의 죄에 대한 공소시효 기간은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에도 불구하고 15년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형사소송법은 5년 미만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를 5년으로 정하고 있지만, 2항을 신설해 15년으로 늘린다는 의미다.
이 개정안은 짧은 공소시효로 검찰 고발을 피한 호반건설과 같은 사례를 막자는 취지다. 최근 호반건설은 ‘오너 2세’가 경영하는 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608억 원을 부과받았다. 그러나 공정위는 사건 조사에만 3년 이상이 걸렸고 결국 공소시효 도과로 형사고발을 하지 못해 호반건설과 오너가 형사처벌을 피했다.
개정안 제안 이유로는 공정거래법이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를 엄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거론됐다. 기타 불공정 행위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정해두고 있다.
공소시효를 15년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증여세 부과 제척기간에 따른 것이다. 이 사건을 사실상 증여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일부 있다. 공정위는 올해 6월 15일 호반건설에 과징금을 부과하며 ‘이 사건 지원행위로 인해 호반건설주택과 호반산업 등 2세 회사들이 급격하게 성장했다’, ‘두 회사가 합병되며 장남 김대헌이 호반건설 지분 54.7%를 확보했다’고 판단했다.
국세기본법은 ‘납세자가 부정행위로 상속세‧증여세를 포탈하는 경우 등’에 대해 부과 제척기간을 15년으로 정해두고 있다. 이번 사건이 증여의 성격을 띠는 만큼 국세기본법에서 정하는 부과 제척기간을 반영해 공소시효를 15년으로 정한 것이다.
김한규 의원은 “자녀 회사에 일감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사실상 회사를 증여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증여세도 내지 않고 형사처벌도 공소시효 도과로 면할 수 있으니 이 같은 수법이 반복되는 것”이라며 “형사처벌 공소시효를 늘려 법의 위하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기존 시효는 5년만 지나면 면소판결로 소송이 끝나기 때문에 부당이득도 갖고, 처벌도 안 된다. 꿩먹고 알먹는 구조”라며 “시효를 늘려서 범죄수익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환수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져 매우 상징적인 입법”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공소시효뿐 아니라 법정형까지 함께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공소시효가 낮다는 건 예전부터 지적돼 온 사항이라 늘리는 방향은 바람직하다”면서도 “기존 법정형을 올리면서 공소시효도 늘려야 한다. 법조항 체계에 비춰봐도 공소시효가 법정형에 비례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향후 법안 논의 과정에서 공소시효 기간은 다소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다수의 공정거래 사건 전문가들은 “행위에 비해 15년이라는 공소시효는 조금 과할 수 있다”, “법적 질서와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고 7년 정도로 늘리는 것이 적당하다”는 의견들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