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늘며 5년째 감사의견 거절
유니콘 간판뿐인 ‘유니콥스’ 전락
국내 유니콘 5년새 7배 늘었지만
직방 컬리 등 절반이 적자 허덕
전문가들 “기업가치 조정 불가피”
스타트업 연합체 옐로모바일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불리면서 2013년 90억 원 수준에 그쳤던 매출이 2년 만인 2015년 3182억 원으로 30배 넘게 불어났다.
천문학적인 성장세다. 기업가치는 최대 4조 원까지 치솟았고, 국내 2호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 타이틀을 달며 승승장구했다.
영광은 찰나였다. 문어발식 사세 확장으로 양적 팽창을 노리던 중 부실이 급격히 확대됐고, 2017년부터 5년 동안 회계감사에서 의견거절 통보를 받으며 기업 이미지는 곤두박질쳤다. 수년째 유니콘 간판을 달고 있지만 사실상 유니콥스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니콥스(Unicorpse)는 유니콘(Unicorn)과 시체(Corpse)의 합성어, 즉 죽은 유니콘을 말한다.
최근 미국에선 실리콘밸리 유니콘 기업들이 좀비 기업으로 몰락하고 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올리브 인공지능(AI), 트럭운송 스타트업 콘보이, 주택 건설 스타트업 비브가 파산보호를 신청하거나 폐업했다. 공유경제 신화를 일으킨 위워크는 그간 14조 원의 자금을 조달했음에도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 저금리를 기반으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경기 침체와 고금리, 고유가, 정부의 지원 종료가 복합적으로 얽히고설키면서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국내 유니콘들도 살얼음판 위에 있다. 기업 가치가 1조 원을 넘어서는데도 수년간 적자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우리나라 유니콘 수는 2022년도 기준 22곳으로 5년 전인 2017년(3곳) 대비 7배 늘었다. 하지만 이 중 절반은 2022년 기준 적자를 냈다. 직방,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 오늘의 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 모바일 금융 서비스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 리디 등이 손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적자는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컬리의 작년 3분기 기준 누적 매출은 1조5463억 원, 누적 영업손실은 1185억 원에 달했다. 그나마 외형 확대와 수익성 개선에 속도를 내면서 전년 같은 기간(1836억 원)보다 적자를 줄였지만 여전히 손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야놀자도 이 기간 5608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도, 165억 원의 손실을 냈다. 데카콘(기업가치 10조 원 이상 기업) 노리고 있는 비바리퍼블리카도 작년 3분기 기준 누적 매출액이 1조 원을 훌쩍 넘었으나 영업손실이 184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1672억 원) 10.5% 확대됐다. 토스는 수년간 적자 상태다.
벤처ㆍ스타트업 전체로 확대해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2022년 기준 벤처기업 총매출액은 약 211조 원으로 전년보다 2.4% 감소했다. 기업별 평균 매출액은 65억 원으로 4% 확대됐다. 하지만 영업이익 감소세가 심상치 않다. 기업별 평균 영업이익은 2억7000만 원에서 3600만 원으로 87% 급감했고, 평균 순이익은 1억7000만 원에서 -8400만 원으로 150% 추락했다.
코로나 당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유동성 잔치를 기반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몸집을 키웠지만,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경기 침체와 내수 포화, 경쟁력 약화 등이 더해지면서 적자 터널에 갇힌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 기업들의 경우 시장의 눈높이가 전반적으로 낮아지면서 기업가치도 반 토막이 났다. 특히 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 파두 사태는 유니콘 기업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렸다. 기업 가치 1조800억 원으로 유니콘이 됐지만 예상과 달리 지난해 3분기 매출이 3억 원에 그치면서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파두 사태로 기업의 성장성 평가는 앞으로 더 깐깐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각에선 2000년대 닷컴 버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선 이들 유니콘의 기업 가치가 조정될 필요성을 지적한다. 앞서 우아한형제들 창업자 김봉진 대표는 2019년 “스타트업은 현재 가치보다 30%를 깎고 보는 게 적정가치 평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속적인 벤처 투자로 스타트업 벤처들이 고평가된 점을 감안하면 조정 과정은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유니콘의 양적 확대에 욕심내기보다 기술력과 경쟁력을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내실을 키우고, 활발한 엑시트(Exit)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은 과거 ‘스타트업 Exit 생태계 전략연구’ 보고회에서 “유니콘으로 평가받았으나 결국 M&A나 기업공개(IPO)에 이르지 못해 비상장 상태로 남는 ‘좀비 유니콘’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쿠팡이 수년간 조 단위의 적자를 내면서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와 결과적으로 시장 지배력을 높인 사례를 들여다 봐여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근 쿠팡은 지난해 3분기까지 5개 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총장은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기업은 사라지는 것이 맞다”며 “유니콘 기업이 적자가 나는 것보다 비즈니스 모델의 적합성에 대해 투자자들이 인정하고 자금을 투입한다는 게 중요하다. 수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단순하고 전통적인 도식”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