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수급을 해외 제약사에 의존해 보건의료 예산 출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입원환자 수는 8월 3주차 1444명으로 전주 대비 5.7% 증가하며 최근 재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관련 의약품 자급화 요구가 높지만, 수입 제품이 선점한 시장에 국산 제품의 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26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는 글로벌 빅파마 제품 일색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식으로 품목허가 했거나 긴급 도입한 수입 제품이 쓰인다.
백신은 화이자의 ‘코미나티주’, 모더나의 ‘모더나스파이크박스주’,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스제브리아주’, 얀센의 ‘코비드-19백신얀센주’ 등이 허가됐다. 치료제는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정맥 주사제 ‘베클루리주’, 화이자의 경구투여제 ‘팍스로비드정’이 정식 허가됐다. MSD의 경구투여제 ‘라게브리오캡슐’은 식약처 긴급사용승인으로 국내 공급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4년이 넘었지만, 관련 의약품 국산화 성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백신 ‘스카이코비원멀티주’를 개발해 2022년 6월 29일 식약처의 정식 품목허가를 받은 것이 유일하다. 이후 정부와의 선구매 계약에 따라 2022년 9월에 초도 물량을 공급했지만, 회사 측은 같은 해 11월 낮은 접종률로 인해 초도물량 이후 추가 완제는 생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치료제 역시 국내 기업의 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팬데믹 초기 셀트리온은 정맥주사제 ‘렉키로나주’를 개발해 2021년 2월 5일 식약처의 조건부 허가를, 같은 해 9월 정식 품목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2월 질병관리청은 렉키로나주가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효과가 낮다는 판단에 따라 신규 공급을 중단을 선언했다.
경구투여제는 아직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국내 개발 제품이 전무하다. 일동제약이 2021년부터 일본 시오노기제약과 공동으로 개발한 ‘조코바정’이 식약처에 허가를 신청했지만, 기약 없이 대기 중이다. 일동제약은 조코바정에 대한 긴급사용승인이 불발되자 지난해 1월 조코바에 대한 수입 품목허가를 신청한 이후 12월 이를 ‘제조판매 품목허가’로 변경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반면 해외 상황은 국내와 대조적이다. 현지 기업과 규제 당국이 협력하며 백신과 치료제 자급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달 22일 화이자와 모더나가 개발한 업데이트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했다. 이들 기업이 내놓은 새 백신은 최근 유행 중인 오미크론 KP.2 변이를 겨냥하고, 이와 유사한 다른 하위 변이에도 교차보호 효과가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22년 11월 조코바정을 긴급사용승인해 의료현장에 도입했고, 올해 3월 정식 품목허가한 바 있다.
보건당국은 백신과 치료제를 전량 수입품으로 조달하는 만큼, 재유행이 찾아올 때마다 계획에 없던 예산을 대폭 지출해야 하는 처지다. 이달 1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코로나19 치료제 추가 구매 예비비는 3268억 원에 달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확정된 올해 질병청의 코로나19 치료제 구입비 예산 1798억 원의 2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접어든 만큼, 국내 기업의 제품 출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투자해야 할 연구·개발 비용이 큰데, 거둘 수 있는 수익은 적어서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원장은 “코로나19 관련 의약품 시장은 국내 기업들이 후발주자로 진입해야 하는 시점이며, 경쟁자도 워낙 많아서 기업의 입장에선 미래가치가 크지 않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라며 “공익 차원에서 민간 기업의 연구개발을 독려하려면 투자자들과 정부의 지속적인 대규모 지원이 필요한데, 현재는 그다지 전폭적인 투자가 약속된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정 원장은 “백신 자급화, 법정 감염병 관리 강화에 대한 정부의 지원 의지가 뚜렷한 만큼, 일부 기업들은 연구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