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백신 시장을 놓고 글로벌 제약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국에서 허가를 받은 제품이 없는 상황에서 RSV 백신의 국가예방접종(NIP) 사업 포함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국내 시장이 수입 백신들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10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아렉스비, 미국 화이자의 아브리스보 등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 모더나의 엠레스비아 역시 식약처에 허가 신청을 준비 중이다.
올해 5월 아렉스비가 세계 최초로 허가된 이후 6월 아브리스보, 7월 엠레스비아까지 연이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했다. 세 백신 모두 유럽 의약품청(EMA) 승인도 획득한 상태다.
RSV는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급성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로 제4급 법정 감염병이다.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감염 후 1~2주 안에 건강을 회복하지만 재감염되기도 한다. 영유아와 노인에게는 세기관지염이나 폐렴 등 심각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질병관리청은 미숙아와 6개월 미만 영아, 면역체계가 약화된 소아 등을 고위험군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건조하고 기온이 떨어지는 10월부터 3월까지 RSV가 유행한다. 최근 질병청의 호흡기 바이러스 주간 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해 43주차(10월 26일 기준) 호흡기 바이러스 검출률은 45.2%로, 이 가운데 RSV는 4.1%를 차지했다. 가장 흔한 감기 원인인 리노 바이러스(24.1%), 코로나19와 아데노 바이러스(5.1%)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이에 질병청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RSV 백신의 국내 허가에 대비해 NIP 도입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아직 한국에서 승인된 RSV 백신은 없다. RSV 예방용 항체 주사 베이포투스가 올해 4월 식약처 승인을 받아 국내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백신은 접종 후 체내에서 항체가 생성되도록 유도하는 원리로 면역력을 형성하지만, 베이포투스는 체내에 항체를 직접 주사해 감염 예방 효과를 얻는다. 허가 대상은 생후 첫 RSV 계절에 진입하거나 생후 첫 RSV 계절 도중인 신생아와 영아, 생후 두 번째 RSV 계절 동안 중증 RSV 질환에 대한 위험이 큰 생후 24개월 이하의 소아 등이다.
국산 백신 개발은 아직 갈길이 멀다.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유바이오로직스가 식약처로부터 RSV 백신 후보물질 ‘EuRSV’의 임상 1상을 승인받았다. 임상 시행 기관인 고려대구로병원은 만 19세 이상 80세 이하의 건강한 성인 100명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내약성을 평가할 계획이다. 올해 5월 임상 참가자 3명에게 EuRSV를 투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임상을 개시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지난해 5대 블록버스터 파이프라인으로 메신저리보핵산(mRNA) 플랫폼을 적용한 프리미엄 RSV 백신 개발 목표를 제시했지만, 아직은 후보물질을 탐색하는 단계다.
글로벌 기업들은 성인과 고령층으로 접종 범위를 확대해 시장 점유율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국내 허가된 베이포투스는 신생아와 소아에게만 주사할 수 있어, 국내 고령층의 RSV 감염 예방 의약품은 미충족 수요가 크다.
접종 연령 확장에 가장 앞서 나가는 기업은 화이자다. 아브리스보는 지난달 18세에서 59세 성인으로 접종연령군을 확대했다. 아브리스보의 기존 접종 대상은 60세 이상 성인과 32~36주차 임산부였다. 이에 따라 아브리스보는 FDA 허가 RSV 백신 중 유일하게 전체 성인을 대상으로 접종 가능한 선택지가 됐다.
GSK 역시 접종 범위를 넓히기 위해 추가 연구를 실시하고 있다. GSK는 아렉스비에 대해 60세 이상 성인 대상으로 FDA 허가를 획득한 이후, 올해 6월 50~59세 성인까지 접종 연령군을 확대 승인받았다. 현재는 18~49세 RSV 고위험군과 18세 이상의 면역저하자를 대상으로도 임상을 진행 중이다.
관련 시장도 대폭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대달리서치(Daedal Research)에 따르면 전 세계 RSV 백신 및 항체 의약품 시장은 현재 2560억 달러(352조9216억 원) 규모로 추산되며, 연평균 성장률은 38.9% 수준으로 2028년 9530억 달러(1313조8058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백신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를 비롯해 독감,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일해, 로타바이러스 등 국내 주요 백신 시장은 소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특히 RSV 시장은 수요가 많지만, 공급이 없어서 외국 기업들의 선점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