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열에 다섯 “내년 소비 줄일 것”
기업연구소장 “고환율ㆍ고관세 이중고”
비상계엄과 탄핵 여파로 더욱 얼어붙은 내수 시장을 살리기 위해 재계가 발 벗고 나섰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여파로 내수 침체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진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며 각종 경제 지표는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이날 원ㆍ달러 환율은 1453원으로 출발했다. 이는 2009년 3월 금융위기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연초 2700선을 웃돌던 코스피 지수도 2400선 대로 떨어졌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며 국민 과반수는 내년에 소비 지출을 줄일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경제 싱크탱크와 기업 연구소장들은 경기 부양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2025년 국민 소비지출계획 조사’를 시행한 결과 응답자 과반(53.0%)은 내년 소비지출을 올해 대비 축소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국민은 내년 소비 지출을 축소하려는 이유로 고물가 지속(44.0%)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다음으로 △소득 감소ㆍ실직 우려 15.5% △세금 및 공과금 부담 증가 8.5% 등이 뒤를 이었다.
국민 10명 중 4명은 가계 형편이 어려워질 것으로 응답해 내년 소비심리가 악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계 형편이 악화할 것이라는 응답은 42.2%였다.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12.2%로 악화 응답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한경협은 회원사들에 내수 진작과 소상공인의 어려움 극복을 위해 예정된 송년 모임 등을 정상 추진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주요 권고 사항으로는 △연말연시 행사ㆍ모임 예정대로 진행 △임직원 잔여 연차 사용 권장 △비품ㆍ소모품 선구매 △행사 조기 계약 및 계약금 선지급 △협력사 납품대금 조기 지급 등이 담겼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최근 대내외 정치적 불확실성과 예정된 행사ㆍ모임 등의 취소로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라며 “내수 부진 극복과 소상공인의 경영난 타개를 위한 기업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재계는 자발적인 내수 진작 노력과 함께 정치권에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가 현대경제연구원, LG경영연구원, HMG경영연구원, 롯데미래전략연구소, 삼성글로벌리서치, 두산경영연구원, 포스코경영연구원 등 8개 기업 경영경제연구소장을 초청해 진행한 간담회에서 기업연구소장들은 가장 큰 대내 리스크로 환율 상승을 꼽았다.
이들은 “원화 약세는 수입 물가 상승을 초래해 민간 소비 냉각, 기업 생산 비용 증가에 따른 투자 및 고용 위축 등 내수 경제 부진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라며 “비우호적 대외 환경으로 수출 경쟁력마저 약화한다면 향후 수년간 한국 경제 반등 모멘텀이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한국 경제 시스템이 정상 작동 중이라는 신뢰를 줘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정부ㆍ국회가 국정 운영 안정에 힘쓰고 거시지표 관리, 대외 신인도를 회복에 힘써야 한다”라며 “예정된 경제정책을 흔들림 없이 진행하고 재정 조기 집행 등을 통한 경기부양에 나서며 당분간은 기업에 부담을 주는 규제의 신설ㆍ강화도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17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 경제 4단체 수장은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내수 진작을 위한 추경 편성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