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셰 정비사 꿈꿨다가 요리로 방향 전환
“까다롭고 타협하지 않는 기준이 원동력”
뉴욕타임스(NYT)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국내 유일 미슐랭 3스타 안성재 셰프를 조명했다.
NYT는 22일(현지시간) ‘서울에서 유일하게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셰프다. 그를 건드리지 마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의 일대기를 되짚어봤다.
NYT는 안 셰프에 대해“13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군대에 입대하고 요리학교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서 최고의 레스토랑을 열었다”며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 그는 넷플릭스 스타가 됐다”고 소개했다.
안 셰프는 한국 유일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모수의 셰프이자 오너로, 요리계 정상에 올랐음에도 한국에서 이름이 잘 알려지진 않았다고 NYT는 짚었다. 그가 처음 흑백요리사에 심사위원으로 소개됐을 때 몇몇 참가자들은 “누구야”라고 속삭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기 있는 요리 경연 대회에서 인상 깊은 심사위원으로 유명해졌다. NYT는 “그는 이제 가장 유명한 뉴스 프로그램 중 하나에서 황금 시간대 인터뷰를 하고, 서브웨이 샌드위치 광고에도 출연했다”며 “한국판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SNL)에서 몸에 꼭 맞는 자주색 정장과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독특한 말투를 따라 한 것은 안 셰프의 유명세를 반영한다”고 전했다.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인 서울 에베트의 셰프이자 흑백요리사에 함께 출연한 조셉 리저우드는 안 셰프에 대해 “그는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셰프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매체는 안 셰프의 독특한 일대기에 주목했다. 13살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캘리포니아 남부에 정착했다. 부모의 중국 식당에서 일을 도왔지만 주방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세계 여행의 꿈을 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대에 입대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가 발생하자 이라크 파병을 지원했다. 안 셰프는 바그다드에 배치돼 헬리콥터와 탱크에 연료를 공급하는 일을 했다. 이라크에 있는 동안에는 전투식량인 MRE(Meal, Ready to Eat)를 먹었다. 안 셰프는 “모든 음식의 맛이 같았지만 당시에는 항상 배가 고파서 신경 쓰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제대한 뒤에는 포르셰 정비사가 되는 것을 고려했지만, 어느 날 하얀 요리사 가운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요리학교에 등록하게 됐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의 일본식 레스토랑인 우라사와에서 무급으로 설거지를 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이후 프렌치 런드리, 베누, 아지자 등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와 모수를 차렸다.
NYT는 “30년 전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한 안 셰프에게는 놀라운 귀향”이라며 “미군 병사로 이라크에 참전하고 요리학교 학비를 벌기 위해 접시 닦는 일을 하다가 미국 최고의 주방에서 일하게 되는 등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고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의 까다롭고 타협하지 않는 기준이 그를 한국 유일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셰프이자 오너로 이끌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