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이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47대 대통령 취임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자문기구인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지명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물론이고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팀 쿡 애플 CEO 등이 나란히 참석했다.
눈길을 더한 것은 취임식 자리 배치다. 빅테크 수장들은 대통령 가족의 바로 뒤인 두 번째 줄에 나란히 앉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석 배정으로 수장들을 각별히 예우한 것이다. 개중에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불편한 관계였던 이들도 없지 않다. 옛 악연까지 털어버린 상석 안배였다.
물론 대기업 후원에 대한 답례 등 트럼프의 평소 태도와 취향을 감안한 비판적 해석도 없지 않다. 민주당 소속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그들(수장들)은 트럼프 내각 인사들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했다. 날 선 반응이다. 하지만 새로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취임식 의전을 통해 추가 비용 한 푼 들이지 않고 ‘시장친화’, ‘기업친화’ 메시지를 날리는 데 성공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기업 혁신을 응원한다. 어떤 결과를 낼지 모르는 새 시도들에 대해 대체로 ‘진흥’ 관점으로 임하는 것이다. ‘규제’ 위주로 움직이는 유럽연합(EU)과는 크게 다르다. 문화의 차이, 태도의 차이가 국부와 미래도 가르고 있다.
미국은 2008년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EU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둘 다 14조 달러대의 GDP 규모였다. 하지만 15년이 흐른 2023년은 다르다. EU의 GDP는 15조5000억 달러로 대동소이하지만 미국은 27조4000억 달러로 곱절로 늘었다. 더욱이 미국 경제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노 랜딩’ 기대가 번지는 수준이고, EU는 독일과 프랑스마저 성장률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고전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 수정’도 국제 판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 성장률 전망치는 2.2%에서 2.7%로 상향 조정됐으나 독일(0.8%→0.3%), 프랑스(1.1%→0.8%) 전망은 바닥을 기고 있다.
트럼프는 자국 인공지능(AI) 진흥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수차례 발표했다. AI 규제를 완화하고 거대언어모델(LLM) 등 첨단 기술을 앞세워 글로벌 기술 개발 경쟁에서 우위를 점령하겠다는 속내다. 취임식 상석에 앉은 빅테크 수장들이 그 ‘전쟁’을 이끌게 된다. 취임식 자리를 음미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우리도 차제에 자성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사회는 시장경제의 주역인 기업과 경영인을 어찌 대우하고 있나. 권력자들은 걸핏하면 기업인을 불러 ‘병풍’ 취급을 하고, 국회는 국정감사 철만 되면 범죄 혐의자를 부르듯 기업인들을 소환하기 일쑤다. 이래서야 뭔 희망이 있겠나. 트럼프에게서 배울 것은 빨리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