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경영직설] 환율 상승은 ‘정치 혼란’의 비용

입력 2025-01-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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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수익 좇고 위험 피하는 게 자본속성
줄탄핵·계엄으로 불확실성 극대화
수습 늦어지면 제2외환위기 우려돼

환율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작년 10월 말까지 1300원대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은 11월에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뚫고 올라가 12월에 1470원대로 급등했다. 새해 들어와 1400원 중후반대에 머무르고 있지만 언제 다시 상승할지 불안불안하다.

환율은 한 나라의 경제적 부와 정치적 안정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지표이다. 자본은 수익을 좇아 들어오고 위험을 피해 나간다. 경제가 침체하고 정치가 혼란에 빠지면 자본이 대규모로 빠져나가며 그 나라 화폐를 달러로 바꾸는 수요가 증가해 환율이 상승한다.

우리나라가 딱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 경제성장 잠재력이 고갈되어 2025년의 성장률은 1%대로 전망된다. 주식시장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해 국내외 투자가들로부터 외면당한다. 탄핵소추 남발과 비상계엄 사태로 유발된 국정혼란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키운다. 이념적 대립과 사회적 갈등은 총성 없는 내전이라 부를 정도로 치열하다. 경제와 정치가 동시에 가라앉으며 한국에 대한 투자매력도가 감소해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도 원화 자산을 투매하고 달러로 교환하며 환율이 급등한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개입하여 환율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언제 다시 요동칠지 알 수 없다. 정부는 환율을 1450선에 유지하고자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연금 해외자산의 10% 수준인 480억 달러를 외환시장에 풀었고,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를 3%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화 가치 하락 요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대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과의 금리 역전에 따른 환율상승을 막느라 달러를 투입해 외환보유액은 바닥 수준이다. 작년 12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156억 달러로 5년래 최저 규모다. 안정선인 4000억 달러를 간신히 넘는 금액이라 더 이상 환율방어에 사용할 여력이 없다. 최후의 보루인 외환보유액이 무너지면 국제 투기세력의 공격이 가세하고 자본유출이 가속화해 외환위기 가능성이 진짜로 커진다.

인위적으로 억눌려진 환율상승 압력이 분출하면 더 큰 폭으로 튀어 오를 수 있다. 앞으로 환율변동의 방아쇠는 대외환경의 변화에서 당겨질 것이 예상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해 한국에 어떤 요구를 할 것인지에 따라 환율이 크게 변동할 것이다. 러시아의 협조 덕분에 방위력이 증강한 북한이 국정공백을 틈타 무력도발이나 핵실험을 저지를 경우 환율에 미치는 파장도 심각할 것이다. 외환 전문가들은 정치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외부환경에서도 돌발변수가 발생하여 내우외환이 겹치면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환율상승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기업에 미치는 직간접적 영향은 매우 크다. 우리나라 비금융기업의 대외채무액은 작년 3분기 말 기준 1761억5060만 달러에 달한다. 원화 가치가 100원 떨어지면 대외채무는 18조 원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환율상승은 내수기업에 가장 큰 피해를 준다. 원자재 수입가격이 상승하고 물가가 인상되어 내수기업은 원가상승과 수요감소의 이중고를 겪게 된다. 가뜩이나 부진한 내수판매로 고전하던 중소기업들은 적자 확대로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다.

환율상승에서 수출기업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고 환차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급망이 글로벌화하여 환율변동에 따른 손익이 엇갈린다. 환율상승이 수입 원자재 비용의 인상을 불러일으켜 수출기업의 환차익을 상쇄한다.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한 수출기업은 오히려 현지 생산비용이나 운영비용이 증가해 원가부담이 가중된다.

환율상승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은 실질적인 국부 유출이다. 환율이 10% 상승하면 앉아서 국민소득도 10% 감소한다. 해외 나가서 살 수 있는 구매력도 하락한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길어지면 국제 신인도가 하락하여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외자 유치가 어렵고 자본유출이 확대되어 또다시 환율인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정치적 대립이 환율상승을 불러일으켜 기업을 해치고 경제를 망치는 피해를 주는 것이다. 환율이 다시 급등해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제2의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내란’이 ‘환란’으로 번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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