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동기 따른 기업가가 주도 역할
다락같은 법인세·규제론 경쟁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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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은 사물을 지각·정리·통일하여 인식하는 능력인 지성의 발전과 함께 진보한다. 또한 지성은 사물에 대한 인식을 더 정확하게 하려는 인간의 노력으로 축적되는 지식과 함께 발전한다. 따라서 지식 축적이 없거나 미미하여 지성이 쇠락하면 문명은 진보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경제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제 운행에 대한 지식의 축적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사람들의 물적 토대가 무너지고 정신은 거칠어진다.
지난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연설을 통해 성장과 회복을 강조하고, 성장의 기회와 결과를 나누는 공정 성장을 위해 ‘기본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주 4.5일 근무제를 거쳐 주 4일 근무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견 바람직해 보이지만, 경제 운행의 큰 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이 대표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경제 정책을 보면, 그 지식수준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지식은 있으나 단기적 이익을 저울질하는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 수준 낮은 입법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한 것 같다.
성장은 단순한 생산의 증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유무형의 재화에 부여하는 가치의 증가를 의미하며, 이를 주도하는 주체는 기업가이다. 물론 그 동기는 이윤이며, 여기에는 심리적 이윤도 포함된다. 즉 기업가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미지(未知)의 이윤 기회를 찾아 나서거나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기업가는 반복적 실험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재화를 예측하고 판단한다. 그런 예측과 판단이 맞으면 이윤을 얻고 성장하며, 틀리면 손해를 보고 퇴출된다. 물론 기업가의 판단과 행동은 기업 활동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될 때 성공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한 적극적 정책을 마련할 수 없다. 정부는 이윤과 손실 체제와 무관하므로 많은 사람이 어떤 재화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부여하는지를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성장을 주도하는 기업 활동을 가로막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주 52시간 근무제나 주 4일 근무제와 같은 규제는 철폐돼야 한다. 노동 시간은 과학과 기술 발전이 이뤄지면서 점진적으로 짧아졌다. 자본 축적이 이뤄지면서 노동 생산성이 이전보다 더 높아져 노동 수요가 점차 줄고, 더 많은 소득을 벌게 된 노동자들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노동 공급을 점차 줄인 결과 짧아진 것이다. 노동 시간의 단축이 이뤄질 노동 시장 여건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노동 시간을 짧게 규제하면, 시장은 왜곡되고 기업의 성장은 물론 생존을 어렵게 한다. 지금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여러 산업이 주 52시간 노동 시간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다.
자본(capital)은 시장에서 화폐로 평가한 자본재(capital goods)의 총액을 말하는데, 중요한 사실은 자본재에는 시간이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호미와 굴착기로 똑같은 면적의 땅을 똑같은 깊이로 팔 수 있다. 그런데 그 차이는 들어가는 시간이다. 그래서 시간이 없다는 말은 자본이 없다는 말과 같다. 자본재가 많아지면 단시간에 많은 소비재를 생산할 수 있어 사람들이 낮은 가격에 많은 양을 소비할 수 있으므로 생활이 윤택해진다. 이는 곧 경제 성장의 역사는 자본 축적의 역사와 같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법인세를 낮추고 기업 관련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는 논리는 바로 자본 축적을 통해 경제 성장을 견인하기 위함이다.
이 대표가 말한 ‘성장과 분배는 상호모순이 아닌 상호보완 관계’가 성장과 분배가 따로가 아니라 경제활동에서 각자가 생산에 공헌한 만큼 몫을 얻는다는 것을 뜻한다면 타당하다. 그러나 이 대표가 정의한 공정 성장을 뜻한다면, 이는 ‘회복과 성장’을 뒤엎는 것이다. 공정은 제반 규칙을 준수하며 상거래를 하는 것을 의미할 뿐, 발견한 기회와 거둔 결과를 나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헌도가 낮아 가난한 사람들은 기본소득이 아니라 선별적 복지로 돌봐야 한다.
희소한 자원 제약하에서 장기적 이득보다는 단기적 이득을 크게 여기는 인간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인간 이성은 무지하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어떠한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그런 조건은 우리 인간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것을 해주겠다는 정부보다 각 개인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독소를 제거하는 정부가 훨씬 더 바람직하다. 이를 깨닫는 것이 지성 발전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