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자산 거래소가 상장 및 상장폐지 권한을 가지고 있어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상장 권한을 분리하거나, 투자자들에게 투표로 상장 및 상폐 자산을 선택하는 방안 등이 존재하지만 모두 국내 상황에 적용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6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거래되는 가상자산의 거래지원(상장) 및 거래지원 종료(상폐)를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지난해 발표한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DAXA·닥사)의 거래지원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만, 교집합적인 기본 원칙을 담은 자율규제인데다 닥사 역시 법정 기구가 아니라 구속력도 떨어진다. 일부 가상자산의 경우 유통량 변경, 해킹 등 문제로 닥사 차원에서 유의종목으로 지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상폐는 개별적으로 결정해 거래소마다 결론이 다른 사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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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최근 국회에서 개최된 한 토론회에서도 거래소 상장 권한과 이해상충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토론회에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거래소는 거래량이 많으면 수수료가 많이 나와 이익인데, 상폐 권한을 거래소에 주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인 강준현 의원 역시 “우리 가상자산 생태계는 개인 투자에 한정돼 있고, 거래소에 권한이 집중된 기형적 구조”라고 했다.
다만, 가상자산 시장 특성상 상장과 상폐 및 유통, 보관 등 전통 금융의 관점에서 여러 기능이 수직 통합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권호운 차앤권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최근 토론회에서 “FTX 사건 등으로 고객자산과 기업자산의 분리보관이나, 내부자 거래 등에는 엄격한 것이 세계적 추세지만, 수직적 통합 자체는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글로벌 사례를 살펴보면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일본의 모델이다. 닥사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일본의 일본암호화폐거래소협회(JVCEA)는 금융상품거래법에 근거한 법적 지위를 가진 법정 협회다.

JVCEA는 가상자산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해 일본 거래소 내에서 상장이 가능한 코인의 종류를 제한한다. 상장 심사도 까다로워 신규 등록을 위해서는 수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2022년부터 △3개 이상 회원사에서 취급 △1개 회원사에서 거래된 지 6개월 경과 △협회가 별도 조건 미제시 △부적절한 사유 미발생 등의 조건을 만족한 경우 그린리스트로 등록한다. 등록 자산에 한해 기존에 수개월이 걸리던 사전 심사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상장 수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최근 바이낸스가 시도하는 커뮤니티 거버넌스도 일부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바이낸스는 8일 커뮤니티 공동 거버넌스 메커니즘이 포함된 신규 상장·상폐 매커니즘 도입을 발표했다.
바이낸스에 따르면, 0.01바이낸스토큰(BNB)을 보유한 투자자는 원하는 프로젝트에 상장 투표를 할 수 있다. 기준에 따라 모니터링 구역에 포함된 부실 우려 토큰에 대한 상폐 투표에도 참여 가능하다. 다만, 각 투표 결과가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바이낸스는 투표 이후 정식 심사를 걸쳐 상장 혹은 상폐 여부를 결정한다.
국내에서도 2023년 말 코인원이 거래지원 희망 자산 투표를 진행한 바 있다. 그중 일부 자산은 실제 거래지원이 이뤄지기도 했으나, 일회성에 그쳤다.
이에 대해 권오훈 변호사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자본시장처럼 한국거래소 같은 기관이 결정하는 일원화 모델은 가상자산시장과 맞지 않다”면서 “일본은 협회에서 리스트를 작성해 그것만 하라는 것인데,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권 변호사는 일본 모델의 두 가지 문제로 대형 거래소 집중과 국가 경쟁력 저하를 꼽았다. 그는 “(일본 모델을 따를 경우) 닥사도 결국 대형 거래소가 선정한 종목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너무 유연성이 떨어져 경직된 시장이 될 우려가 크다”고 했다.
이어 “커뮤니티 모델은 굳이 토큰을 활용한 거버넌스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굳이 정부 기관이 개입하기보다 내부에서 토론하고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서 “기본적으로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거래를 지원하되, 투명성을 높여 투자자들이 보고 판단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 국내 업계 관계자는 “커뮤니티에 다수결로 맡기는 방식은 소수 의견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 바이낸스의 경우 상장과 상폐 결정 이후 규제적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데 비해 국내 거래소는 규제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단순 비교나 도입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일본과 바이낸스 사례 모두 그대로 적용하긴 힘든 부분이 있다”면서 “상장 부분은 모범사례를 기초로 거래소가 각자 진행하되, 상장 폐지의 경우 공동의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닥사에 일부 권한을 주는 등 제도를 보완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