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딴지부부의 중국여행]제주엔 올레, 중국 윈난에는 호도협

입력 2010-11-09 08:40 수정 2010-11-2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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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옆으로 雪山…발 아래론 아득한 풍경

온 나라가 걷기 열풍이다. 제주의 올레를 시작으로 지리산과 북한산의 둘레길까지, 주말이면 온 나라 산천이 들썩인다. 길이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1년간의 중국 배낭여행 끝에 우리도 걷기 예찬론자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일주일이면 서너 번, 1시간가량 동네 구석구석을 산책한다. ‘서울의 삭막한 골목길에 무슨 재미가 있고, 만날 지나다니는 길인데 지겹지도 않냐’고 반문하겠지만, 우리에게는 날마다가 새롭고 흥미롭다.

길은 언제나 나와 우리를 향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우리가 옮기는 발걸음을 따라서 우리의 생각도 움직였다. 이 길에서 저 길로 몸과 발이 움직이는 동안 우리는 스스럼없이 각자의 흉금을 터놓았다. 길에서 우리가 농담으로 주고받은 대화가 때로는 좋은 아이디어로 재탄생했다. 걸으면서 사소한 고민들은 신기하게도 차츰 사라졌다.

우리가 이런 걷기의 묘미를 알게 된 것은 중국 윈난(雲南)성의 호도협(虎跳峽) 트레킹을 통해서다. 해발 5596m의 옥룡설산과 해발 5396m의 하바설산을 끼고 약 17km의 협곡을 따라 해발 1800m~2500m의 산길을 걷는다. 발아래로 양쯔강의 상류인 금사강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계곡이 되어 포효한다.

중국에서도 참으로 보기 드문 장관이다. 혹자는 뉴질랜드의 밀포드, 페루의 마추픽추 트레킹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라고 치켜세울 정도다.

챠오터우(橋頭)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막상 걷기시작하자 나는 ‘왜 사람들은 이 길에 열광하는 걸까?’ 의문이 생겼다. 수업 중인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밭고랑을 일구느라 쟁기질에 여념 없는 소와 농부를 스치고, 양 떼를 몰고 가는 할머니와 수줍은 ‘니 하오 마’ 인사가 오갔다. 우리네 산골 마을에서 보아온 순박한 풍경. 하지만 여행지로서는 다소 밋밋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한 시간쯤 걸었을까. 길 양 옆으로 설산이 위용을 드러냈다. 변화무쌍한 하늘을 따라 설산이 사라졌다 이내 다시 나타났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의 폭으로 길이 이어지고 발아래 풍경은 아득했다. 말을 타고 이 길을 지난다면 그 옛날 차마고도(茶馬古道)를 지나던 마방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호도협에서 가장 난코스로 꼽히는 28밴드가 우리에게는 오히려 별맛이었다. 구불구불한 오르막이 28번 굽이쳐 오르는 길이라고 해서 28밴드라고 부르는데, 세상이 다 뱅그르르 도는 것처럼 경사가 요동친다. 정상에 서니 내 두 발로 걸어 올랐다는 게 뿌듯해서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 그래서 28밴드 정상에서 바라보는 기막힌 장관이 ‘수고한 나에게 주는 보너스’로 여겨진다.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알리는 등대처럼, 트레킹 중에 식사나 숙박할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도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 않았다. 커다란 바위에 페인트로 위치, 얼마나 더 걸어야하는가 정도를 이따금 적어놨을 뿐이다. 때때로 마주 오는 소 한 마리와 양 떼에게 인간인 우리가 나서서 ‘양보의 미덕’을 발휘했다.

이 길은 사람만을 위한 길이 아니었다. 지나는 모두에게 공평하고, 모두가 공유하는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을 닮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고 잠들었던 그날 밤, 중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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