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환포지션 한도 축소’ 라는 정부의 1차 개입조치 발표가 있던 지난달 27일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는 “환율이 올해 고점(5월 25일, 1185원50전) 보다 10% 정도 뛰었으며 최근 3개월 간 5% 절상됐다”며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두면 환차익을 노린 자본유입이 훨씬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자본유입 부작용 심각…정부, 환율 방어선 ‘겹겹’= 최근의 환율 급락은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들이 자국 경기 부양을 위해 양적 완화 정책을 펴 돈을 풀어댔고 그 결과 풍부해진 자금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간 결과다. 우리나라 경제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판단한 외국 자금들이 우리나라 증시나 채권시장 부동산 등 금융·자산시장으로 몰려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원화가 다른 통화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됐었다는 인식도 최근 환율 하락세를 부추기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몰려들어오는 자금이 환율은 물론 국내 금융시장에 직·간접적으로 작용해 우리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수입 규모를 비교하는 대외의존도가 10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원화가 절상될 경우 우리나라 수출 채산성에는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아가 경상수지 악화는 외환 유출을 가속화해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 도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이미 환율은 우리 수출기업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080원선을 재차 위협하며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당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1.9원 내린 1081.5원에 마감됐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9월 9일(1077.3원) 이후 1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원·달러 뿐만 아니라 원·엔 환율도 심각하다. 일본 정치권이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자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돈풀기 정책을 선포하면서 원·엔 환율은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 들어 1400원~1500원대에서 거래되던 원·엔 환율은 지난 10월 18일 1400원을 깬 이후 계속 내리막길이다. 5일 현재 1314.73원으로 최근 1년간 최고점이었던 6월 4일(1514.80원)에 비해 13.2% 떨어졌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 이후 일본 정치권의 공격 대상은 원화에 정조준돼 있는 형국이다.우리나라와 일본은 무역경합도가 높아 한국 수출은 원·엔 환율에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점이다. 자민당 아베 총재는 집권할 경우 사실상 무제한으로 돈을 풀겠다고 공약한 상황이어서 주요 경쟁국인 우리나라의 수출 경쟁력은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허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금융팀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양적 완화 등 통화정책 만으로 수요 위축에 대응하다보니 원화 강세가 심화되고 있다”며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기업의 피해를 좌시할 수 없는 정부로서는 정책 대응을 보다 강화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석찬 대신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정부의 최근 규제 움직임은 환율 하락에 우호적인 대외 환경이 지속된다는 판단 하에 내년 원화 절상을 둔화시키기 위한 단기적인 조치로 해석된다”면서 “특히 주요국들의 양적 완화 정책이 자국통화 약세를 통해 수출을 좀 더 끌어올리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계속해서 외국자본 유입을 억제하는 적절한 규제나 당근책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효과는 ‘글쎄’…당국 경고 만으로 시장심리에 큰 영향 =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부 규제가 실질적으로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기대 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허인 팀장은 “자본규제가 외국인 채권투자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외국자본의 순유입을 억제하는 데는 효과가 없었다”고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선물환 포지션 규제는 환 헤지의 어려움으로 외국인 채권투자가 줄어들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동안 통계를 보면 유의한 수준이 아니었다”면서 “과도한 자본 유출입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당국이 시장에 사인을 준다는 의미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력한 규제 수단을 시행한다는 당국의 경고 만으로도 외환시장에서 효과가 있다는 시각도 많다. 또 정부의 선제 대응이 빠른 자본 유출입에 대한 변동성을 줄이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재준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동향연구팀장은 “자본유입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그 규모도 커질 수 있어 정부의 강한 경고 메시지로도 외환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며 “정부의 과도한 시장 펀더멘털 조정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국내 시장에 대규모 자금이 들어왔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또 대거 빠져나갈수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조치는 외환시장엔 긍정적이다”고 평가했다.